최원휘·박소영 "메트 데뷔보다 더 떨려…관객 울릴 준비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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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주인공22~2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샤를 구노 작곡)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테너 최원휘(42)와 소프라노 박소영(36)에겐 공통점이 많다.
테너 최원휘·소프라노 박소영
코로나로 '메트' 활동 접고 귀국
'전막 오페라' 국내 첫 무대 데뷔
"관객들 울지 않으면, 우리 책임
모든 에너지·감정 다 쏟을 것"
둘 다 2년 전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에서의 활동을 접어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메트를 포함한 뉴욕의 모든 공연장이 2020년 3월에 일제히 문을 닫은 탓이다. 최원휘는 그해 2월‘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으로 메트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데 이어 3월말 차기작 출연을 앞둔 상황이었다. 2019년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으로 메트에 데뷔한 박소영은 요정 역을 맡은 ’라 체네렌톨라‘가 개막하는 날에 극장 폐쇄 통보를 받았다.두 사람은 또 팬데믹 시기에 부모가 됐다. 박소영은 한국에 돌아와 결혼도 하고, 첫 아이도 낳았다. 최원휘도 소프라노 홍혜란과 결혼 16년 만에 2세를 가졌다.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사실상 두 사람의 ‘전막 오페라’ 국내 데뷔 무대라는 점도 같다. 둘 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코로나19 이전까지 미국과 유럽 등 해외 무대에서 활동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갈라 공연이나 콘서트 무대에 섰을 뿐이다.
지난 19일 서울시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메트 데뷔 때보다 훨씬 더 부담되고 떨린다”고 했다. “메트 등 외국 주요 오페라 무대에 데뷔할 때는 신인으로 무대에 섰잖아요. 이번 공연은 해외에서 인정받은 성악가가 국내에서 검증받는 차원이라 중압감이 훨씬 큽니다.”(최원휘) “그동안 해외에선 밤의 여왕이나 ’호프만의 이야기‘의 올림피아, ‘후궁 탈출’의 블론데, ‘박쥐’의 아델레 등 극고음을 내는 배역(콜로라투라)을 맡아 왔어요. 줄리엣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고 나가는 서정적인 배역(리릭)은 이번 무대가 처음이어서 더 긴장되고 설레요.”(박소영)
최원휘는 5년 전 독일 에어푸르트 극장 소속 솔리스트로 활동할 때 로미오 역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로미오 역은 첫눈에 반한 사랑의 설렘부터 연인을 잃고 절규하는 고통과 격정까지 다채로운 감정의 색깔을 진정성 있게 표현해야 합니다. 소리를 크고 멋있게 내기보다는 노래로 매 순간 관객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진실한 로미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 것은 줄리엣도 마찬가지다. 박소영은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출산 이후 목소리로 낼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더 넓어지고 깊어진 것 같다”며 “무엇보다 소리로 줄리엣의 다양한 감정을 관객에게 진실하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총 5막으로 구성된 구노의 오페라는 원작에 비해 두 주인공의 비중이 높다. 각 막의 중요한 순간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노래로 이끌어간다. 그만큼 두 주역이 얼마나 노래와 연기의 합을 잘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이번 공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는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아서 그런지 마치 이전에 여러 번 공연했던 것처럼 소통이 잘 되고 소리도 잘 맞는다”며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니어도 가장 ‘케미’(케미스트리)가 좋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여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오페라가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은 마지막 부분이다. 두 연인이 운명의 장난 같은 오해로 다시 재회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희곡과는 달리 오페라에서는 로미오가 독약을 들이켠 직후 줄리엣이 깨어나 유명한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하지만 기쁨의 재회도 잠시. 로미오의 몸에 독이 퍼지지 시작하고 두 연인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최원휘와 박소영은 “관객을 울릴 준비가 끝났다”고 했다. “가장 아름답고 슬픈 아리아와 이중창이 흐릅니다. 5막 지하 무덤 장면은 감정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극 전체가 응축돼 있어요. 마지막 이중창은 누구나 눈물을 흘릴 만큼 비통합니다. 이 장면을 연습할 때 꼭 우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공연장에서 관객을 울리지 못하면 저희 책임이란 생각으로, 모든 에너지와 감정을 무대에 쏟아부을 각오입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