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덫에 걸린 여야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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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갈등 해결·조정 능력 잃어 ‘정치 실종’한국의 정치가 온통 법에 볼모 잡힌 형국이다. ‘정치의 사법화’에 ‘사법의 정치화’까지 겹쳤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의 판단에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 수사에 맞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잇단 대통령 고발, 특검 카드를 꺼내고 있다.
갈등 정치적 해결 못하고 판사 방망이에 당 운명 맡겨
여당 기능 잃어 … 연금 개혁·반도체 입법·종부세 등 표류
민주당, 실현하기 힘든 대통령 고발·‘김건희 특검’ 꼼수 추진
李대표 의혹 물타기 및 수사 맞대응·당 결속 도모도
“대표 개인 의혹에 公黨이 ‘방탄’ 자처하는 건 문제” 지적
국민의힘은 8월 8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되면서부터 정치의 사법화 수렁에 빠져 있다. 대표직에서 해임된 이준석 전 대표의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집행과 비대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법원의 주 위원장 직무 정지 결정→국민의힘 이의 신청→이 전 대표의 비대위원 전원 직무집행 및 비대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정진석 비대위 체제 가동→이 전 대표, 정 비대위원장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당 윤리위원인 유상범 의원과 이 전 대표 징계 문제를 놓고 주고받은 문자 내용이 노출되면서 분란을 더하고 있다.집권 여당이 당의 운명을 법원 판사의 방망이에 맡겨진 지경에 이른 것은 정치력 부재 때문이다. 갈등 해결과 조정 능력, 대화와 토론 등 민주 정치의 기능이 무너지고 극한의 대립만 남은 게 국민의힘의 현주소다. 정치 실종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이 이 지경이 되도록 누구 하나 정치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진 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 ‘체리 따봉’ 문자 메시지 공개 등으로 갈등의 핵심이 된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풀었어야 했지만 때를 놓쳤다.
갈등의 또 다른 진원지인 ‘윤핵관’이 일찌감치 2선으로 물러나면서 꼬인 실타래를 풀어 나갔어야 했는데 이 역시 뒤늦었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 등이 후퇴했지만 윤핵관으로 꼽히는 정진석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비대위 시즌2’도 순탄하게 운영될지는 미지수다. 법원이 또다시 이 전 대표가 낸 무효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다면 당은 헤어나기 어려운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선거 연승에도 불구하고 수개월째 우왕좌왕하면서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의 기능을 상실했다. 정권의 주요 정책을 입법으로 뒷받침하고, 내각의 든든한 방패 막이가 돼 주는 것이 집권 여당의 역할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집안 싸움에 골몰하느라 종부세 부담 완화와 법인세 인하, 연금 개혁, 반도체 입법 지원 등 시급한 민생 현안에 대해 전혀 뒷받침 하지 못하고 있다.거대 야당 민주당은 ‘이재명 방탄’을 위해 똘똘 뭉쳐 대통령 고발, ‘김건희 특검’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으나 국민의힘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노조 불법 쟁의행위를 조장하는 노란봉투법(노동법 개정안) 등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 태세에 국민의힘은 어떤 대응 전략도 짜지 못하고 있다. 윤핵관은 물론 정치 사법화로 몰아간 이 전 대표도 퇴진하는 것으로 정상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적인 일을 정치 영역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정당이 지속 가능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사법의 영역을 정치로 끌어들이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이 대표를 겨냥한 수사가 본격화하자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은 파상적이다. 이 대표와 관련된 수사는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 특혜 의혹 △김문기 전 성남시 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관련한 허위 발언 △백현동 의혹 관련 허위 발언 △쌍방울그룹의 변호사 비용 대납 의혹 △기업들의 성남FC 후원금 의혹 △이 대표 자택 맞은편 경기주택도시공사의 대선 관련 합숙소 활용 의혹 등이다.
검찰은 이 대표를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방송사 인터뷰에서 “(김 전 처장은) 하위 직원이라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정황 증거들이 잇달아 나왔다.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 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선 경기지사 시절인 지난해 10월 20일 국회 국정 감사에서 “국토교통부가 직무 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국토부가 협조를 구한 것이지 협박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토부 공문에도 ‘지자체가 결정’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경찰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재수사 결과 이 대표의 제삼자 뇌물 공여 혐의가 인정된다는 내용을 검찰에 통보했다. 두산건설이 성남FC에 광고비를 후원하는 대가로 그룹 소유 병원 부지를 용도 변경해 준 혐의와 관련, 당시 성남시장이자 성남FC 구단주였던 이 대표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당은 당 전체가 이 대표 방탄에 나서고 있다. “김대중 현해탄 (납치) 사건 연상”, “사법 살인”이라고 일제히 공세를 폈다. 검찰과 경찰 소환에 불응하겠다고 했다. 마치 ‘이재명 사당화(私黨化)’를 입증하려는 듯하다. 윤 대통령을 잇달아 검찰에 고발했다. 대선 후보 때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해 ‘이 모 씨에게 모든 거래를 일임하고 4개월 만에 손실만 봤다. 이 씨와 절연하고 끝냈다’는 것이 허위라는 게 민주당의주장이다.
또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6월 스페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 때 수천만원짜리 펜던트와 팔찌 등을 착용한 것까지 문제 삼았다. 윤 대통령이 대선 때 재산 등록을 하면서 이런 장신구를 신고하지 않은 게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건희 특검법’도 발의했다. 여기에 더해 친이재명 최고위원들은 “(윤 대통령이) 임기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 등 탄핵까지 암시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 고발과 ‘김건희 특검’, 탄핵을 동시에 꺼낸 것은 여러 목적이 있다. 투쟁력을 높여 당내 결속을 도모하고 이 대표를 둘러싼 여러 의혹 물타기를 통해 방탄복을 더 두껍게 만드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특검법 내용을 보면 논란의 소지도 많다. 특검은 대통령이 소속되지 않은 교섭단체에서 2명을 추천하면 그중에서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민주당이 단독 추천하겠다는 것으로,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대통령 고발과 ‘김건희 특검’ 모두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은 내란·외환의 죄가 아니면 소추되지 않는다. 특검도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정치적 목적의 꼼수로 비친다. 당과 아무 관계가 없는 대표 개인 의혹에 대해 공당(公黨)이 당력을 쏟아부어 ‘방탄 의원’을 자처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사법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떳떳하지 못한 태도라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운운은 수사가 이어지면 탄핵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의미다.
홍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