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질주' 일진전기, 올 매출 1조 넘본다

하이엔드 제품 개발에 총력
500㎸ 변압기 美 수주 대박
12년 만에 '제2 전성기' 맞아

황수 대표 "글로벌 에너지 위기
탄소중립·신재생 대전환 기회로"
친환경 전선으로 유럽 진출 준비
일진그룹의 모태 일진전기가 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까지 42년이 걸렸다. 1968년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창업한 뒤 한 세대를 훌쩍 넘긴 2010년에야 1조원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창업보다 수성(守城)이 어렵다’는 표현처럼 성숙한 외형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규모는 축소됐고 손익은 들쭉날쭉했다. 2016년엔 매출이 6780억원으로 줄고 영업이익도 44억원을 내는 데 그쳤다.

그랬던 일진전기가 ‘1조 클럽’ 복귀를 눈앞에 두는 등 부활 분위기가 완연하다. 외형과 수익성, 수주 잔액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제2의 전성기’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난해 매출 9323억원, 영업이익 204억원에 이어 올해는 12년 만에 다시 1조원대 매출을 올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황수 일진전기 대표(사진)는 치열한 연구개발(R&D)을 사업 재생의 비결로 꼽았다. 황 대표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 그중에서도 하이엔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R&D가 성가를 보인 대표적인 사례가 500㎸ 변압기다. 종전 365㎸ 제품보다 성능이 좋은 500㎸ 변압기는 생산하는 족족 미국 고객사들이 빠르게 사 갔다. 늘어나는 수출에 자신감이 붙은 일진전기는 차단기도 종전 대비 한 단계 높은 수준의 420㎸ 제품을 선보였다. 황 대표는 “신제품 개발에 속도가 붙으면서 제품 라인업이 잘 갖춰져 꽉 막혀 있던 수출길이 도처에서 뚫리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친환경 전선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가교폴리에틸렌이라는 환경 유해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재활용이 가능한 폴리프로필렌 전선을 개발해 인증받고 신뢰성 평가가 한창”이라며 “평가를 마치면 유럽 시장에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품질 관리도 빼놓을 수 없는 성장 동력이다. 그는 3년 전 단독 대표이사를 맡자마자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매뉴얼을 작성했다. “품질은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품질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철학에서다. 동시에 외형과 수익성을 안정적으로 꾸리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설치했다. 황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아 수주 전 단계부터 위험 요소를 정확하게 계량화하도록 했다. 그는 “신용도, 평판, 수금 조건 등 모든 것을 측정하고 수주함으로써 우발채무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월 1회 정기적으로 열되, 필요하면 수시로 만나 논의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고 했다. 올해 수주 규모는 전년 대비 50%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전쟁이 에너지 위기를 초래하면서 탄소중립과 신재생에너지 같은 에너지 대전환을 촉발했고 자연스레 노후 인프라 교체에 따른 전선 수요 증대가 기대된다는 것이다.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일진전기는 전반적인 증시 부진 탓에 지난 3개월간 주가가 25%가량 하락했다. 최근 들어 수주 호황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로 직전 3거래일간 3.03% 상승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