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소·중견기업의 사업재편은 '생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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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활력법' 개정 6주년, 사업재편 탄력기업의 세계에 영원한 1등은 없다. 영원할 것 같던 피처폰의 1인자 노키아는 스마트폰 등장에 미온적으로 대처했고,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고 말았다. 삼성은 달랐다. 삼성은 피처폰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엄중한 현실을 받아들였고, 갤럭시 시리즈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했다. 그 후 삼성은 세계 1위 스마트폰 메이커로 성장했다. 사업재편이 두 기업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500개 이상 기업의 성공사례 발굴할 것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최근 들어 사업재편 압력이 전방위로 거세다. 인공지능(AI)·메타버스 등 디지털 전환 기술은 구매-생산-판매에 이르는 기업활동의 전 과정을 바꿔나갈 기세다. 한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탄소·친환경 사업재편 역시 새로 떠오른 변수다.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대응 결과에 따라 우리 기업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 오랜 기간 우리와 호혜적 분업 구조를 이뤄온 중국은 로봇·2차전지 등 첨단 업종을 중심으로 경쟁자로 전환했다. 우리는 선제적 사업재편을 통해 중국의 전방위적인 추격을 효과적으로 따돌려야 한다.삼성은 파운드리를, 현대자동차는 미래 모빌리티를 새로운 먹거리로 삼았으며, 한화는 한국판 록히드마틴을 표방한다.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대기업들은 스스로 제 살길을 찾아갈 것으로 본다.
문제는 3고(高)와 사투를 벌이고 있고, 저수익·저성장의 덫에 걸려 있는 중소·중견기업이다. 이들에 사업재편 시도는 기업의 생존을 걸어야 하는 문제다. 기업과 정부가 2인(人)3각(脚)을 이뤄 중소·중견기업들의 사업재편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활력법은 6년 전 유화·조선·철강 등 주력 업종의 사업재편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됐다. 법 제정 이후 수년간 사업재편 승인 건수가 연간 30건에 머무는 등 업계 호응이 크지 않았지만, 지난해 승인 기업 수가 100개를 돌파하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연구개발(R&D), 컨설팅 등 사업재편 인센티브를 대폭 보강했고, 업종별 협단체를 통해 사업재편이 필요한 기업군을 체계적으로 발굴했기 때문이다.윤석열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500개 이상 기업의 사업재편 성공 사례를 만들어 확산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활력법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범위 확대다. 특정 업종에 국한된 재편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업종을 지탱하는 산업 생태계 전체가 전환되도록 할 것이다. 둘째, 속도가 중요하다. 현행법에는 사업재편을 촉진하는 상법·세법상 특례가 부족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역삼각합병, 가속상각 등 사업재편 활성화를 돕는 특례를 발굴해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금 지원이 관건이다. 지난달 산업부와 금융위원회는 사업재편 금융 지원을 1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4800억원 규모의 R&D를 추진하는 등 사업재편 자금 지원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줄탁동시(啄同時)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암탉이 알을 품고 있을 때 병아리가 안에서 껍데기를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그 반대로 어미 닭이 밖에서 껍데기를 깨뜨려주는 것을 ‘탁’이라 한다. 줄탁동시는 이 두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만 온전한 병아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의 사업재편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자발적 혁신, 변화 의지와 이에 대한 정부의 인센티브 지원이 동시에 일어나야 비로소 기업도 온전한 사업재편을 달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