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틀어쥔 푸틴, 우크라戰 예비군 30만명 동원령…'전면전'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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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첫 발동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동했다. 러시아의 군 동원령 발동은 2차세계 대전 이후 처음이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면 러시아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영토 수복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함에 따라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전황 불리해져 체면 구기자
군병력·군수품 강제 동원 나서
"서방 핵 협박에 모든 수단 쓸 것"
점령지 러시아 편입 찬반투표
美·英 맹비난…"푸틴 위협 심각"
러시아 증시·루블화 가치 급락
○부분 동원령 발동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러시아와 러시아의 주권, (영토의) 통합적 보호를 위해 부분적 동원을 추진하자는 국방부와 총참모부의 제안을 지지한다”며 “대통령령에 서명했고 동원 조치는 오늘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다만 이번 동원령이 전면적이 아닌 부분적 동원령임을 강조하며 “부분 동원령의 대상은 전투 경험이 있는 예비역 군인들이 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예비군 30만 명을 동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부분 동원령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군 병력, 군수품 등이 부분적으로 강제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당국은 동원령을 발동하기 전에 사전작업을 해왔다. AP뉴스에 따르면 전날 러시아 연방의회 하원 격인 국가두마는 ‘총동원령’ ‘계엄령’ ‘전시상황’ ‘투항 시 최대 징역 10년형’ 등의 내용을 추가한 헌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자국 군수업체들에도 무기를 공급하는 속도를 높이라고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군수산업 발전 전략회의에 참석, “(러시아의) 군수 산업체들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필요한 무기와 군사 장비를 군에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요국 고위 인사들이 러시아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며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러시아도 다양한 파괴 수단을 갖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가 위협받으면 러시아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공격 재개도…서방 맹비난
지금까지 러시아 정부는 전쟁을 위한 동원령 발동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가 북부에서 반격해 영토 6000㎢를 수복하자 입장을 바꿨다.이날 러시아는 동부의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를 비롯해 남부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등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네 곳에서 러시아 편입을 위한 주민투표를 23~27일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병합이 이뤄지면 러시아군은 지난 2월부터 내세운 ‘특별 군사 작전’ 대신 국토방위 목적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전쟁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보다 쉽게 추가 병력 증강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합치면 약 900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국토 전체의 15%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는 헝가리, 포르투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맞먹는 영토를 빼앗기는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자포리자주와 헤르손 주 등의 주민들이 내릴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방국가는 즉각 반발했다. 길리안 키건 영국 외무장관은 푸틴의 연설에 대해 “푸틴의 위협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규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도 맹비난했다. 그는 “푸틴이 노골적으로 유엔을 무시하며 전쟁 확대에 골몰하고 있다”며 “가짜 주민투표와 추가 병력 동원이 힘의 표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나약함의 신호이자 러시아 실패의 신호”라고 말했다.
동원령 선포에 러시아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 대표 주가지수인 MOEX지수는 모스크바 증시 개장 직후 9.6% 급락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지난 2월 24일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러시아 루블화 환율도 장중 한때 달러당 63.1029루블로 어제보다 4.91% 치솟으며 가치가 축소됐다. 영국 투자은행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의 수잔나 스트리터 애널리스트는 “전쟁 확대 위기가 고조되자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도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국제 유가도 요동쳤다. 에너지 위기가 다시 악화할 거란 전망 때문이다. 21일 오전 5시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10월물) 가격은 전장 대비 2달러(2.38%) 오른 배럴당 85.98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 런던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1월물 선물 가격은 2.35% 치솟은 92.76달러에 거래됐다.
한편 러시아군은 동원령 발동과 함께 우크라이나 남부의 자포리자 원전 공격을 재개했다. 우크라이나의 원자력 사업자인 에네르고아톰은 이날 “러시아 테러리스트들이 밤중에 자포리자 원전을 다시 폭격했다”고 밝혔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