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백미당 주인, 한앤코로 바뀌나

홍원식 회장, 1심서 패소
법원 "계약대로 비용 받고
한앤코에 지분 넘겨야" 판결

"김앤장 쌍방대리는 무효
매도인 권리 보호 못받아"
홍 회장 측 "항소하겠다"
사진=한경DB
남양유업 지분 매각을 둘러싼 홍원식 회장 일가와 국내 사모펀드 운영사 한앤컴퍼니(한앤코) 간 법적 다툼에서 법원이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홍 회장 측은 앞선 세 차례의 가처분 소송과 이번 본안 소송 1심에서 모두 패하며 남양유업은 물론 외식사업부인 백미당 운영에서도 물러날 위기에 몰렸다.

불가리스 사태가 부른 소송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정찬우)는 22일 한앤코가 홍 회장과 가족을 상대로 낸 주식 양도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홍 회장과 가족이 한앤코와 맺었던 계약대로 비용을 받고 주식을 넘길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이번 사건은 일명 ‘불가리스 사태’로 불거졌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4월 13일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 감염을 억제하는 효과를 확인했다”는 허위 사실을 주장했다가 식품의약안전처로부터 고발당했다. 불매 운동과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홍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회장직 사퇴와 회사 매각 계획을 밝혔다.

남양유업은 같은 해 5월 27일 한앤코에 홍 회장 일가가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53.1%)을 3107억원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홍 회장 측은 한앤코가 백미당 매각 제외와 오너 일가에 대한 예우 등의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그해 9월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한앤코 측은 홍 회장 측에 계약대로 지분을 넘기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별도 합의서’ 인정 못 받아

홍 회장 측이 법정에서 항변한 내용은 △별도 합의서 불이행 △김앤장 변호사의 쌍방대리 등 두 가지였다.홍 회장은 백미당을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과 오너일가 처우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별도 합의서가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홍 회장 측에서 작성한 것으로 원고와 피고 모두 날인한 적이 없다”며 “위 문서로 계약일 이전에 한앤코 측이 백미당 분사나 오너일가 처우에 대한 문제를 확약했다는 점을 추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계약서 어디에도 ‘백미당’이나 ‘외식사업부’ 등의 언급이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쌍방대리’도 인정하지 않았다. 홍 회장은 한앤코와 자신의 대리를 동시에 맡아 계약을 진행했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이 홍 회장에게 불리한 계약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의 업무 내용을 미뤄봤을 때 홍 회장 측을 ‘대리’한 것이 아니라 ‘자문’한 것으로 봤다. 이 때문에 법이 금지한 ‘쌍방대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홍 회장은 계약 직후 쌍방 자문 사실을 알았을 것이나 즉시 이의제기하지 않고, 피고 측 변호사에게 추가 질의를 하기도 했다”며 “이는 홍 회장 역시 쌍방 자문에 동의했거나, 사후 동의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끝나지 않은 법정 다툼

이날 선고 직후 한앤코는 홍 회장에게 “남양유업의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도록 판결을 수용하고 스스로 약속한 경영 퇴진과 경영권 이양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홍 회장 측 대리인은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즉시 항소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홍 회장은 가업으로 물려받은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쌍방대리 행위 등으로 매도인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홍 회장 측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남양유업 내부 직원들 사이에선 다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간부급 직원은 “경영권 관련 법적 분쟁과 관계없이 이른 시일 내에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싶은 게 직원들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10월부터 비상경영 체제로 김승언 경영혁신위원장이 경영지배인을 맡고 있다. 김 지배인은 남양유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남양맨’이다. 남양유업은 경영권 분쟁과 소비자 불매운동 등이 겹치며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2020년부터 연 매출이 1조원 밑으로 떨어져 지난해에는 매출 9561억원에 영업손실 779억원을 냈다.

오현아/하수정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