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에 부는 ESG 바람…위원회 신설하고, 보고서 발표

화이자,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의 ESG 활동이 구체화되자 국내 바이오업계도 ESG 경영 강화에 나서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통계시스템을 구축하고 ESG위원회를 신설하거나, ESG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한다. ESG 경영 진단을 위한 자체 지표를 구축한 곳도 있다
[한경ESG] ESG NOW
마크로젠이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온실가스 인벤토리 검증성명서를 수여받았다고 22일 발표했다. 왼쪽부터 김창훈 마크로젠 대표, 서정선 회장, 유영숙 ESG위원회 위원장, 강명수 한국표준협회장, 고호진 에너지환경센터 센터장, 윤찬식 에너지환경검증연구소 소장. 마크로젠 제공
국내 바이오업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에 공들이고 있다. 화이자,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를 중심으로 ESG 활동이 구체화되자 K-바이오도 방향성을 잡느라 분주한 모습이다.지난 8월 19일, 유전자 분석업체 마크로젠은 온실가스 배출원을 규명하고 각각의 배출량을 산정하는 통계 시스템인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구축했다고 발표했다.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관련 통계 시스템을 구축한 국내 바이오 기업은 마크로젠이 처음이다. 마크로젠은 유전체 분석 기술을 보유한 정밀의학 생명공학 기업이다. 연구소나 기업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단백체 분석 서비스부터 개인의 질병 예측을 돕는 유전자 검사 및 암 유전체 검사 등 임상 진단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실가스 배출 통계 시스템 구축 나서

한국표준협회는 마크로젠 서울 강남본사, 가산 지놈센터, 대전 지놈센터, 모델동물센터 등 4곳의 국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검증하고 검증성명서를 수여했다. ‘2006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가이드라인’,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지침’ 등 국제 수준의 산정 기준에 근거해 정확성을 검증했다는 설명이다. 유영숙 마크로젠 ESG위원장은 “해외 법인을 포함해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ESG 경영에 속도를 내는 곳은 마크로젠뿐이 아니다. 지난 8월 초 셀트리온은 이사회에 ESG 위원회를 신설했다. 위원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해 독립성을 확보했다. 내년부터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도 발간할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이번 ESG 위원회 설립에 앞서 4월에는 지속가능경영실 산하 ESG추진팀을 신설했다. 또 전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ESG 경영 추진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왔다는 설명이다. 현재 ESG 경영 진단을 위한 자체 종합지표 구축을 완료하고 ESG 현황 진단과 개선 과제 도출을 진행 중이다. 해당 결과를 바탕으로 연내 ESG 경영 이행에 대한 개선점을 찾고 보완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추석 셀트리온은 인천과 충북 지역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생활용품 나눔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그룹 내 후원과 지원 사업을 전담하는 셀트리온복지재단을 통해 진행됐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ESG 경영 가치에 주목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6월 첫 ESG 보고서를 발간했다. ESG 경영 성과를 세계에 공유하기 위해 앞으로 국·영문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SK바이오사이언스가 지난해 창출한 사회적가치(SV)는 총 3399억원이다. SV란 기업과 이해관계자들이 경제·사회·환경 영역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한 수치다. 구체적으로 경영활동을 통한 경제 간접 기여 성과 1923억원, 백신 개발을 통한 인류 건강 증진 및 이해관계자 행복 추구를 통한 사회 성과 1478억원 등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 하반기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고 백신 생산공장인 안동 L하우스의 환경경영시스템 국제 인증(ISO14001)을 획득할 계획이다. 또 인권경영 선언문 제정 및 인권영향평가 실시, 협력사 행동규범 제정, 공급망 ESG 관리 전략 및 체계 수립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7월 ESG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난해 첫 보고서를 시작으로 올해 두 번째 발간한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속가능한 환경 조성(환경), 건강한 사회 구축(사회), 책임 있는 사업활동 이행(거버넌스) 등 3대 핵심 가치를 선정하고, 이와 관련한 9가지 중점 영역에 대한 세부 전략을 수립했다. 먼저 지속가능한 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주력할 방침이다. 지난해 온실가스 원단위 배출량을 전년 대비 32.3% 줄였다. 2026년까지 2021년 대비 직간접 배출 온실가스 원단위 배출량을 54.3% 감축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나아가 협력사 및 물류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도 25.7% 줄이기로 했다. 또 협력사와의 상생 경영을 목표로 ESG 관련 협력사 행동 규범을 강화하고 진단 지표를 개발하는 한편, 핵심 협력사에 대해서는 ESG 진단 및 실사를 수행 중이다.

ESG 경영 및 ISO 인증 10곳 중 3곳 제약·바이오업계의 ESG 경영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바이오협회의 ‘해외 바이오·제약 기업 ESG 대응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장 바이오 기업의 70%가 ESG에 대한 공개 자료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내도 마찬가지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해 11월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ESG 경영 및 ISO 인증을 도입한 기업은 10곳 중 3곳에 불과했다.

바이오 기업은 업계 특성상 공중보건에 기여하고 신약 개발 등으로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S(사회) 분야에 강점이 있다. 해외 다국적 제약사들은 투자자의 요구 증가 등으로 S를 넘어 E(환경)와 G(지배구조) 분야에서도 다양한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미국 암젠은 지난 2월 7억5000만 달러 규모의 녹색 채권을 발행하고, 2027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 머크(MSD)는 지속가능성 채권을 발행했으며, 스위스 노바티스는 202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글로벌 빅파마(제약사)를 중심으로 ESG 활동이 구체화되는 만큼 국내 바이오업계도 국내외 표준 기관을 중심으로 기준을 수립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눈에 잘 보이는 환경 분야 위주로 목표를 수립 중”이라며 “우리도 글로벌 제약사들처럼 신경 써야 향후 투자나 입찰에서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