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동참한 삼성전자…탄소중립 속도 낸다
입력
수정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2050 탄소중립 선언을 발표했다. 환경문제는 선택적 지출이 아닌 필수 투자라는 인식을 담은 1992년의 '삼성 환경선언' 이후 30년 만에 나온 것이다. 삼성전자는 우선 2050년까지 글로벌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하기로 했다. 탄소 감축과 재생에너지 사용 등과 관련한 목표치도 내놨다[한경ESG] ESG NOW삼성전자가 최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정보기술(IT) 기업 중 전력·물 사용량이 가장 많은 기업으로 그간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탄소중립 선언을 기다려왔다. 삼성전자는 탄소중립 실천 방안도 구체적으로 내놨다. 투자 비용과 타임 스케줄까지 포함된 내용이었다. 다만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삼성전자의 실천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태양광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생산 비용이 워낙 비싸 삼성전자뿐 아니라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환경경영전략 발표…“투자자 우려 해소”삼성전자는 지난 9월 1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하고, 경영 패러다임을 ‘친환경 경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환경문제는 선택적 지출이 아닌 필수 투자라는 인식을 담은 1992년의 ‘삼성 환경선언’ 이후 30년 만에 나온 것이다.
삼성전자는 우선 2050년까지 글로벌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하기로 했다.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캠페인이다. 구체적 실천 로드맵으로 2030년까지 공정 가스 저감, 폐전자제품 수거 및 재활용, 수자원 보존, 오염물질 최소화 등 환경경영 과제에 7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에 필요한 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탄소감축과 재생에너지 사용 등과 관련한 목표치도 내놨다. 삼성전자는 우선 스마트폰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PC 모니터 등 7대 전자제품의 대표 모델에 저전력 기술을 적용해 2030년 전력 소비량을 2019년 대비 평균 30% 개선할 계획이다.삼성전자는 반도체 초저전력 기술 확보를 통해 2025년 데이터센터와 모바일 기기에서 사용하는 메모리의 전력 소비량을 대폭 절감할 계획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200~250TWh가량이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를 삼성전자 차세대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로 사용하고, D램을 DDR5 D램 등으로 교체한다면 8.5TWh 규모의 전력을 아낄 수 있다. 2021년 서울시 가정용 전력 사용량 14.6TWh의 약 60%에 해당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에서도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라인 증설로 2030년 사업장의 하루 취수 필요량이 현재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취수량이란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에 활용하기 위해 주변 하천에서 끌어오는 물의 양을 뜻한다. 삼성전자는 하천에서 물을 새로 끌어오는 것 대신 용수 재이용을 최대한 늘려 이를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재생 플라스틱 사용을 늘려 순환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부품의 50%, 2050년까지 전체 플라스틱 부품에 재생 레진 적용을 추진한다. 삼성전자는 2020년 3만1000톤, 지난해 3만3000톤의 재생 레진을 쓰는 등 2009년 이후 누적 31만 톤의 재생 레진을 사용했다.삼성전자는 현재 연간 탄소배출량이 1700여만 톤(2021년 기준)인 만큼 탄소중립을 달성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자동차 800만 대의 운행을 중단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것이란 분석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는 혁신기술과 제품을 통해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친환경 생태계 구축을 가속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최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은 삼성전자 장기 투자자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발표를 환영했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관건…“사회적 노력 필요”
삼성전자는 원료부터 폐기·재활용까지 전자제품의 모든 주기에 걸쳐 자원순환성을 높이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재활용 소재로 전자제품을 만들고 다 쓴 제품을 수거해 자원을 추출한 뒤 다시 이를 제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자원순환 체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삼성전자는 자원순환 극대화를 위해 소재 재활용 기술과 제품 적용을 연구하는 조직인 ‘순환경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재활용 소재 개발, 폐기물 자원 추출 연구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품의 모든 소재를 재활용 소재로 대체하는 것을 추진하는 조직이다.
폐배터리의 경우 2030년까지 삼성전자가 수거한 모든 폐배터리에서 광물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체재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글로벌 환경을 위협하는 폐전자제품(e-Waste)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제품 수거 체계를 현재 50여 개국에서 2030년 삼성전자가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모든 나라인 180여 개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2009년 이후 2030년까지 누적으로 업계 최대인 1000만 톤, 2050년 누적 2500만 톤의 폐전자제품을 수거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기업의 탄소중립 선언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재생에너지가 원활하게 공급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평균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5%에 그쳤다. 총발전량 577TWh 가운데 재생에너지는 43TWh에 불과했다. OECD 평균(3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RE100 2020’ 연례보고서에선 재생에너지 전환이 어려운 10개국 중 하나로 한국을 꼽았다”며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낮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국내외 RE100 가입 기업 53곳 중 절반이 넘는 27곳이 ‘재생에너지 조달에 장벽이 있는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비싼 발전 단가’다. 미국,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석탄·원자력과 비슷하거나 낮은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 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 kWh당 발전 단가는 한국이 116원으로 미국(48원), 중국(42원)보다 2배 이상 높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전환은 어느 한 기업이 앞장선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공동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