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펀드에 ESG 고려…미래 준비 기업 선별하죠”

베어링자산운용은 가치주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ESG 요소를 투자에 고려하고 있다. 박종학 대표는 ESG를 중시하는 흐름은 퇴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ESG는 단순한 페널티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될 수있다고 강조했다
[한경ESG] 마켓 리더 - 박종학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사진=서범세 기자
박종학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는 국내의 대표적 가치투자자 중 한 명이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도 가치투자의 연장선에 있다. 장기적 시각으로 볼 때 ESG가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베어링자산운용은 모든 펀드에 재무적 성과 외에도 ESG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 박 대표는 “ESG는 단기적 이슈가 아니다”라며 “기업도 미리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2일 을지로 베어링자산운용 본사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 베어링자산운용은 어떤 회사입니까.

“베어링자산운용은 미국 대형 보험사 매스뮤추얼(MassMutual)의 자산운용 자회사입니다. 벱스앤캐피털, 우드크릭, 코너스톤, 베어링 등 산하 자산운용사가 서로 다르게 운용되다 2016년 모두 통합해 베어링자산운용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베어링은 로스차일드에 비견되는 금융 패밀리인 베어링가(家)의 이름을 본뜬 것으로, 역사가 깊어요. 모회사가 ING그룹을 거쳐 매스뮤추얼에 합병됐죠. 현재 본사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베어링자산운용의 글로벌 운용 규모는 한화로 500조원 정도 됩니다. 보험회사의 자산운용사다 보니 채권을 많이 운용합니다. 특히 이머징마켓의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부동산), 구조화 채권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2008년 베어링자산운용 한국법인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되었고, 2020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 국내 최초로 배당주펀드를 출시하는 등 베어링자산운용은 가치주와 배당주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치투자와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보통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을 때 가치에 비해 저평가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비싼 상품이 있는데 앞으로도 더 올라갈 것 같다면 가치가 높은 거죠. 가치투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볼 때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가치평가가 제대로 되는 시점에 수익을 올린다는 철학입니다. 대비되는 접근은 트렌드를 반영하는 모멘텀 플레이죠. 지속가능성은 테마로 접근할 수도 있고, 중장기적으로 볼 수도 있어요. 향후 기업가치가 어떻게 될지 보고 회사를 고르는 것입니다. 현재 수익을 많이 올리는 회사도 중요하지만, 비용 투자를 하더라도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회사를 보는 것이죠. 최근 지속가능성은 각종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면서 더욱 중요한 패러다임이 되고 있습니다.”

- 베어링자산운용은 투자 활동에 ESG 요인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습니까.

“예전에는 죄악주를 빼고 투자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이 강했어요. 하지만 네거티브 스크리닝은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를 사라지게 해 성과와 효율성을 떨어뜨립니다. 베어링은 재무성과와 함께 비재무성과를 고려하는 ESG 통합 방식을 씁니다. 재무정보뿐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보고 ESG 점수가 안 좋으면 비중을 축소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해당 기업은 ESG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재무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 모두 점수를 매기고,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을 할 때 프리미엄을 주거나 디스카운트를 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ESG팀을 따로 두지 않았지만, 운용팀 내에서 애널리스트들이 커버하는 모든 종목에 대해 ESG 평가를 하도록 합니다. 1~5점까지 점수를 매겨 계량화합니다. 비중은 섹터별로 다르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 ESG 평가기관의 평가도 고려하십니까.

“해외 평가사의 평가를 참고합니다. 다만 ESG 투자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데이터인데, 평가기관마다 동일한 기업에 대해 점수가 다릅니다. 상관관계가 0에 가까울 정도죠. 아직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입니다. ESG에 대한 표준 데이터 정리가 아직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정보 공시 표준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ISSB 기준이 나오면 많이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ESG 정보 공시가 매우 중요해지는 거죠.”

- 최근 ESG 투자 붐이 식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글로벌 ESG 투자자금이 빠진 것 같지는 않아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보면 운용자산의 시가평가액은 떨어졌지만, 자금 유입이나 환매율로 보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신규 설정액 규모는 계속 늘고 있어요. ESG 펀드들의 평가액이 20~30% 빠졌지만, 환매가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고요. 작년, 재작년 에너지와 2차전지 그리고 좌초자산이 없는 테크 쪽에 투자한 ESG 펀드가 많았습니다. 최근 추가 하락으로 ESG 투자도 별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투자할 때는 기간을 짧게 보면 안 됩니다. 2~3년 안에 수익이 얼마나 날 것인지를 봐야 합니다. 나아가 5년, 10년, 20년 앞을 내다봐야 합니다. 수익률과 지속가능성을 단기적으로 평가하는 건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 ESG가 실제 기업에는 규제로 다가오는데요.

“ESG는 이제 규제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ESG를 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페널티 문제가 아닌 생존의 위협입니다. 그만큼 심각하게 접근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은행들도 대출이나 투자에서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고 있고, 투자은행은 기업공개(IPO) 때 ESG를 잘하는 기업을 더 넢게 평가합니다. 연기금을 비롯한 자산운용업계도 마찬가지죠. ESG를 중시하는 흐름은 퇴조하지 않았습니다. ESG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프로세스 등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유럽처럼 전문가 그룹을 모아 룰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운용을 하는 입장에서 그린워싱을 피하려면 최소한 평균 이상의 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ESG’를 내걸면서 평균 이하의 기업에도 투자한다면 결이 맞지 않습니다. 유럽은 아예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제(SFDR)에서 ESG 펀드를 세밀하게 나누고 있어요. 우리는 ESG라는 이름을 내건 펀드를 따로 운영하지는 않지만, ESG 통합 전략을 쓰기에 ‘ESG를 이런 식으로 고려한다’는 내용을 투자설명서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 주주 관여 활동도 ESG의 주요 전략인데요.

“지배구조와 관련해 주주총회에 다른 자산운용사에 비해 의견을 많이 내고 있습니다. 주총 투표 외 CEO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기도 합니다. 공시나 이사회 구성, 보상 구조, 이사회 독립성 등을 중점적으로 봅니다. 환경 분야는 아직 많이 보지는 않지만, 해외의 경우 임원들의 ESG 성과를 보상과 연계하기도 합니다.”

- 최근 투자 관점에서 관심 있게 보는 분야가 있습니까.

“최근 EU의 기후 대응 정책 패키지인 핏 포 55(Fit for 55)나 탄소국경세,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을 보면 온쇼어링(해외 기업의 자국 유치나 자국 기업의 국내 아웃소싱 확대)을 추구하는데, 이런 쪽에서 기회가 있는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반면 ESG 전환에서 비용이 많이 들거나 기존 유산이 큰 기업, 좌초자산이 있고 전환이 어려운 기업은 피합니다. 가장 주목하는 것은 2차전지입니다. 리사이클링 중에서도 폐전지를 보고 있죠.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등 2차전지 소재 업체들도요. 중장기적으로 조선업의 경우도 친환경에너지 사용에 주목합니다. 케미컬 쪽에서는 전기저장장치(ESS)와 탄소포집 등이 중요합니다. ESG와 관련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곳도 있지만, 미리 준비하는 곳을 더 관심 있게 봅니다. 당장 수익을 올리지는 않지만, 긴 호흡에서 보면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죠.”

- ESG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결국 투자자와 자산운용을 하는 에셋 매니저의 목표가 같아야 합니다. ESG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당장의 성과를 더 추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긴 호흡으로 봐야 하는가가 늘 고민이죠. 투자자도 긴 호흡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6개월간의 수익 변동을 보고 ‘ESG도 한때의 유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기후변화는 이미 많은 사람이 체감하고 있습니다. 구조적 이슈죠. 3~5년후에는 재무와 비재무적 요소를 통합하고 ESG를 잘하는 기업을 고르는 게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창조적 파괴는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ESG는 보일링 프로그(끓는 물에서 서서히 죽는 개구리)의 예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