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갠더 "이쌩·최단미·임쏠라…3년간 방콕하며 한국 시집 탐독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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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작가축제 온 美퓰리처상 받은 시인 갠더“이쌩, 최단미, 임쏠라….”
"김혜순 시는 폭발적이고 강렬
미국서 그의 시 안읽으면 가짜시인
문학은 다른 삶 이해하게 만들어
이야기는 모든 장벽 뛰어넘는다"
그에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묻자 서툰 한국어가 쏟아져 나왔다. 들어보니 ‘날개’를 남긴 천재 시인 이상, 미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받은 재미동포 시인이자 번역가 최돈미,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소설가 임솔아 얘기였다.이 리스트는 미국 시인 포러스트 갠더(사진)가 최근 읽은 한국 시집의 저자들. 갠더는 미국 언론인 및 문인에게 최고 영예의 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퓰리처상을 2019년에 받은 저명한 시인이다. 지난 22일 서울 서교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록다운(봉쇄령)으로 집에 갇혀 있는 동안 한국 시집을 많이 읽었다”며 “최근 3년간 유난히 한국 시집이 미국에 많이 번역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 사람들은 번역서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미국 도서 시장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3%라니 말 다했죠. 하지만 이젠 달라졌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 문학을 찾는 미국 독자가 늘고 있어요.”
갠더는 23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축제에서 함께 개막 강연을 맡은 김혜순 시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김 시인의 시는 폭발적이고 강렬하다”며 “요즘 미국에서 시를 쓰면서 김 시인의 시를 읽지 않았다면 시인인 척만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 미국을 찾은 김 시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갠더는 “김 시인의 딸이자 화가인 ‘이피’도 함께 만나 그림을 선물로 받았는데, 시인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한다”며 웃었다. 김 시인은 2019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잘 알려진 시인이다.왜 갠더는 굳이 한국의 시를 찾아 읽을까. 낯선 존재와 연을 맺고 함께 사는 ‘연결과 공생’은 갠더의 오랜 화두다. 그가 지난해 출간한 시집 제목은 ‘두 배의 생(twice alive)’. 바위에 붙어사는 이끼 비슷한 생물체 ‘지의류’가 주요 소재다. 그는 “지의류는 조류와 곰팡이가 합쳐진 공생생물인데, 결합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라며 “사람 간의 관계도 ‘너를 사랑하면 내가 변한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스스로가 지구상 모든 걸 지배하는 종족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인간, 내 몸속의 유산균, 피부의 세균 등과 공생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문학은 이처럼 낯선 존재와 공생하는 길을 알려줍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거잖아요. 문학이 없다면 우리는 괴물이 돼버릴 거예요.”
한국문학번역원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공동 주최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서울을 무대로 한국 작가와 해외 작가들이 교류하는 자리다. 올해 주제는 ‘월담 : 이야기 너머’다. 문학을 통해 언어와 국가를 뛰어넘어 교류하는 길을 모색하자는 의미다. 총 35명의 작가(국내 작가 23명, 해외 작가 12명)가 대담, 토론, 낭독 등을 진행한다. 갠더는 “문학의 힘은 전혀 모르는 다른 삶을 이해하고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야기에는 국경이란 게 없죠. 제가 한국 시인 이상의 시에 감동을 받는 것처럼요. 훌륭한 번역만 있다면 문학은 모든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