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동원령에 전국적 반발…주변국·기업도 '탈러시아'

24일 최소 745명 동원 반대 시위로 구금
카자흐스탄, 조지아, 핀란드로 가는 교통량 늘어
폴란드, 라트비아 3국, 핀란드는 러시아인 입국 통제
친러 행보 보이던 헝가리는 숨고르기
러시아에서 예비군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 24일(현지시간)에만 도시 30여곳에서 시위 참가자 740여명이 구금됐다. 러시아 정부는 전투 거부 시 처벌 수위를 높이면서도 채무 상환을 유예해주는 강온책을 내놨지만 징집을 피하려는 이들의 탈출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외국 기업들도 러시아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러시아 32곳서 反 징집 시위...주변국은 입국 제한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인권단체인 OVD인포는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 등 도시 32곳에서 징집 반대 시위로 최소 745명이 구금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청년 반전 단체인 베스나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덤으로 징집 금지”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했다. 러시아는 정부가 미승인한 집회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예비군 30만명 동원을 공표했던 지난 21일에도 러시아 내 도시 38곳에서 징집 반대 시위로 최소 1312명이 체포됐다.징집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의 탈출도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 조지아, 핀란드 등으로 가는 도로 교통량이 22일 급증했다. 주변국들도 대응에 나섰다. 지난 19일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은 러시아인의 입국을 제한하기로 했다. 스타니슬라브 자린 폴란드 총리실 국가안보 책임자는 23일 “군 복무를 피해 오는 러시아인들은 반정부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두려움으로 도피하는 것”이라며 입국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핀란드도 “러시아인의 관광 입국을 막겠다”는 뜻을 이날 밝혔다.


탈출하려는 러시아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곳도 있다. 샤를 미셸 EU 정상의회 상임의장은 “동원령을 피해 탈출하는 러시아인을 유럽이 수용해야 한다”고 23일 강조했다. 몽골 정계 실세인 차히야 엘벡도르지 전 몽골 대통령도 “동원을 피해 도망 온 러시아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이날 밝혔다.

징집 반발에 직면하자 러시아 정부는 처벌 강화와 입영 유인책을 함께 내놨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부 승인 없이 항복하거나 전투를 거부한 자국 군인을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24일 보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동원령 대상자가 주택담보대출 미상환으로 퇴거당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과 이들의 채무 상환을 유예할 것을 대출기관에 권고했다.

도요타, 러시아 공장 결국 폐쇄

전쟁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짐을 싸고 있다. 24일 NHK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는 러시아 상트페르크부르크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가 러시아에서 사업을 정리하는 첫 사례다. 지난해 차량 8만대를 생산했던 이 공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부품 공급난으로 지난 3월 가동이 중단됐다. 닛산자동차, 미쓰비시자동차, 마쓰다 등 다른 일본 자동차 업체도 러시아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대안을 찾고 있는 프랑스 에너지업체 토탈에너지는 카타르 투자를 늘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토탈에너지는 카타르 가스전 개발을 위해 15억달러(약 2조1300억원)를 투자하기로 카타르 에너지부와 합의했다. 지난 6월 20억달러 투자 계약을 체결한 뒤 나온 추가 투자 결정이다. 독일 티센그루프, 지멘스, SAP 등과 네덜란드 에어버스의 임원들도 중동 투자 확대를 위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함께 25일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를 방문한다.

그간 ‘친러’ 행보를 보이며 러시아산 원자로를 들여오려던 헝가리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24일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헝가리는 러시아 원전 도입 프로젝트에서 금융 조달 창구를 러시아 브네쉬에코놈방크에서 가스프롬방크로 바꾸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대러시아 제재를 받는 은행과의 거래를 피하기 위한 포석이다.페테르 씨야르토 헝가리 외무장관은 “원전 기술 이전에서도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며 러시아 기술을 도입했다간 인허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앞서 러시아와 원자로 도입 계약을 체결했던 핀란드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지난 5월 이 계획을 철회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