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與野의 이해충돌 방지법 '셀프무력화'

법 제정하고도 규칙은 만들지 않아
"이중잣대에 내로남불" 비판 커져

이유정 정치부 기자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다른 선진국 의회와 비교해도 유례없이 강력한 이해충돌 방지 방안을 담고 있다.”

‘국회의원 이해충돌 방지 방안’을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한 지난해 4월 22일. 당시 김태년 운영위원장은 “일반 공직자보다 (의원이) 약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같은 달 29일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은 올해 5월 30일 시행됐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국민은 국회의원 이해충돌 방지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는지 알 수 없다. 국회가 하위 규칙을 만들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4월 법이 통과된 것을 감안하면 1년5개월간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법은 지난해 3월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킨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의 부동산 투기 사태’가 계기가 됐다.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을 만들면서 국회의원은 별도 법으로 규정했다. 의원의 사적 이해관계 사전 신고와 공개, 이해관계가 겹치는 상임위 배정 제한 등을 법에 명시하면서 변경 등록 및 공개, 소명자료 제출의 절차·방법·관리 등 세부 사안은 규칙으로 정하도록 했다. 당시 여야는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해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 등의 경우처럼 회기마다 계속되는 이해충돌 논란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도 했다.

여론에 떠밀리듯 만들어진 법은 예상대로 유야무야됐다. 참여연대는 지난 5월 국회에 정보공개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법에서는 ‘의원 본인에 관한 사항을 공개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어디까지 어떻게 공개할지 세부적인 규칙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신고 내용도 부실하다. 일례로 법은 ‘의원과 배우자 등이 주식 등을 소유하고 있는 법인·단체의 명단’을 밝히도록 했는데 신고기준이 될 ‘비율과 금액’은 규칙에서 정해야 한다. 가족들이 공간정보기술 회사 지분을 보유해 국토교통위원회와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진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도 이를 근거로 주식 신고를 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조 의원은 결국 이달 초 보건복지위로 사보임됐다. 이 과정에서 민생 현안을 논의해야 할 상임위 회의는 한 달 가까이 이해충돌 논쟁으로 허비됐다.

참여연대는 국회가 입법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이런 논란에도 법안을 넘겨받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15일 “국회의 예·결산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며 국회 권한 강화를 주장하는 공청회부터 열었다. 행정부엔 호통치고 본인들의 의무는 방기하는 국회의 이중잣대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