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100년 만에 '제2 무솔리니' 등장…유럽연합 분열 태풍의 눈

첫 여성 총리 멜로니 내정

우파연합, 과반의석으로 총선승리
前정부에 실망감…표심에 반영
생활고에 '감세 카드'도 먹혀
親EU 표방…언제 돌변할지 몰라

佛·스웨덴 등 잇단 '극우 돌풍'
對러시아 제재 균열 생길 수도
유럽연합(EU)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에서 극우 여성 총리가 탄생할 전망이다.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이끄는 조르자 멜로니 대표(45)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번째 극우 지도자에 오른다. ‘강한 이탈리아’를 외치는 극우 정당이 득세하면서 러시아를 겨냥한 EU의 제재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2의 무솔리니’ 되나

26일 외신을 종합하면 전날 이탈리아에서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FdI가 주축이 된 3당 우파 연합이 승리하면서 다수당 수장인 멜로니 대표가 총리직에 오르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다수당 대표인 총리가 실권을 가지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예비치 기준으로 우파연합은 43.8%를 득표했다. 이탈리아 정부 구성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 40%를 넘겼다. 단 헌법 개정에 필요한 득표율(3분의 2 이상)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정당별로는 FdI가 26%,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이 대표로 있는 극우 성향의 동맹(Lega)이 8.8%,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노선의 전진이탈리아(Fi)가 8% 표를 얻었다. 이들 우파연합은 상원(200석)과 하원(400석)에서 과반을 확보했다.

민주당(PD)이 속한 중도좌파연합 득표율은 26.1%에 그쳤다. 범좌파에 속하지만 독자 노선을 택한 오성운동(M5S)은 15.3%를 기록했다.이로써 멜로니 대표는 ‘파시즘 창시자인 베니토 무솔리니(집권 1922~1943년) 이후 100년 만에 나온 극우 지도자’이자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쥘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말께 새로운 연립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임시 총리직을 맡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번 조기총선은 지난 7월 연립정부 간 내분으로 드라기 총리가 사임하면서 치러졌다. 지난 정권에 실망한 표심은 ‘유일한 야당’으로 남은 멜로니 대표의 FdI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FdI는 지난해 2월 드라기 전 총리가 초당파연합으로 이뤄진 거국 내각을 구성할 때 나홀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를 덮친 고물가도 멜로니 대표에겐 호재로 작용했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유권자를 향해 정부 지출 확대와 대규모 감세를 통해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호소했다. 멜로니 대표는 반이민자, 반동성애 등으로 표방되는 극우 정책을 내세우며 이탈리아 민심을 파고들었다. 2018년 총선 당시 4%대 지지를 받던 군소 정당 FdI는 이탈리아인들의 분노를 바탕으로 세를 확장했다.

유럽에서 극우 정당 ‘돌풍’

총리에 오를 멜로니 대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에너지 위기가 꼽힌다.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비용이 급등했다. 다만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정 적자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50%로, 그리스에 이어 EU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이런 지적을 의식해 멜로니 대표의 측근인 조반바티스타 파졸라리 상원의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에너지 위기 해결을 위한 공공지출 확대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대(對)러시아 단일대오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멜로니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의사를 강조했지만, 연립정부 파트너인 살비니 대표와 베를루스코니 대표는 대표적인 친러시아 인사로 분류된다.가뜩이나 유럽에선 극우 세력의 돌풍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일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선 네오 나치에 뿌리를 둔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20%가 넘는 득표율로 원내 제2당에 올라 화제가 됐다. 프랑스도 지난 6월 총선에서 유럽 간판 극우 정치인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정통 보수정당 공화당(LR)을 제치고 우파 간판이 됐다.

다만 이탈리아가 EU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탈리아는 1915억유로(약 264조원)에 달하는 EU의 코로나19 회복기금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쿼럼유트렌드 설립자인 로렌초 프레글리아스코는 “멜로니 대표는 나라를 이끌기 위해 국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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