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연다던 비상경제회의 한달째 '개점휴업'

尹해외순방 후 주재한 첫 회의서
경제위기 언급 없이 비속어 대책만
정치에 매몰돼 민생은 뒷전으로
지난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비서관급 회의.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귀국한 뒤 처음 열린 회의였다. 순방 성과와 순방 기간 불거진 비속어 논란에 대한 대책 논의가 주로 이뤄졌다.

대통령 순방 기간에 원·달러 환율이 40원 가까이 급등하는 등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쳤지만 관련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직후 열린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주례 회동 분위기도 비슷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에서도 경제위기 조짐과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은 없었다.최근 대통령실 안팎에선 “퍼펙트스톰이 몰려오는데도 대통령실 참모들에게선 위기의식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 순방 뒤 첫 출근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발언이 대표적인 예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해외 순방의 성과를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본인의 발언으로 발생한 비속어 논란에 대해 질문을 받자 “사실과 다른 보도로 (한·미) 동맹을 훼손하는 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정기국회 기간에 굳이 야권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미 동맹 관계를 훼손하려는 세력을 그냥 둬선 안 된다”는 강경론이 세를 얻으면서 윤 대통령의 발언 강도가 세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나 유감 표명을 기대한 야권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대치 국면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이 정치적 논란에 대처하는 사이 위기 조짐을 보이는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응은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귀국 후 이틀 동안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총리 주례 회동, 국무회의 등 공식 회의가 이어졌지만 시장 안정 대책을 주문하는 대통령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이 “매주 열겠다”고 공언한 비상경제민생회의는 태풍과 해외 순방 등을 이유로 한 달째 순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월 첫 비상경제민생회의 때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서민과 취약계층 지원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28일 열리는 제8차 비상경제민생회의의 주제는 ‘디지털산업 혁신 정책’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미국 뉴욕대에서 발표한 디지털 산업혁신 구상을 구체화하는 방안이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외신에서 ‘제2의 외환위기’까지 거론하는 마당에 순방 성과 홍보보다 위기 관리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통령실부터 불필요한 정쟁에 힘을 빼지 말고 경제 위기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