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납품단가 연동 의무화 땐 시장 왜곡 우려…소비자 부담↑"

이화령 연구위원 "좋은 선택지일 수 있지만 의무화는 신중해야"
"연동 의무화는 정부의 가격 규제…실효성·부작용 우려"
납품단가 연동제를 의무화하면 수급 사업자의 일감이 줄어들거나 최종 소비자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국책연구원에서 나왔다. 이화령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7일 발표한 KDI 포커스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경제학적 논의' 보고서에서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에 연동해 위험을 분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거래 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으나 이를 의무화한다면 효율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원사업자가 이를 회피하는 전략을 쓴다면 정책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고 오히려 수급 사업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며 "경제적 유인을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하도급, 위·수탁 거래에서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에 연동하는 조항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뜻한다. 고정단가로 계약을 맺은 수급사업자가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부담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현재 중소벤처기업부가 희망 기업을 대상으로 연동제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원자재 가격 상승 위험이 큰 상황에서 거래 당사자들은 단가 연동조항을 통해 원자재 가격 불확실성에 따른 부담을 분담하되, 최초 계약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이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이 심한 최근에는 단가 연동 조항이 좋은 선택지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사업자가 위험을 일부 부담하면, 수급사업자로서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더할 이유가 사라져 최초 계약단가가 내려갈 가능성이 높으므로 '윈-윈'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단가 연동조항이 최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이 작거나 그 변동이 생산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할 수 있다면 고정단가로 복잡한 계약과 집행 등에 따른 거래비용을 줄이는 것이 서로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단가연동조항이 강제되면 시장참여자들의 선택이 왜곡돼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며 "계약기간을 단축하거나 다른 거래조건을 왜곡해 이익을 보전하려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사업구조를 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사업자가 단가연동조항에 따른 부담이 과도하다고 판단하면, 하청에 맡기던 일까지 직접 하기로 결정해 수급사업자의 일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갑'인 원사업자가 '을'인 수급사업자에게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을 분담하는 대가로 과도한 단가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또 "공공 조달에서는 정부가 최종 소비자이지만 기업 간 거래에서는 원사업자가 경쟁 상황에 따라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을 적절히 전가할 수 있다"며 "수급사업자의 수익성을 보호해주는 대신 소비자 후생은 줄어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에 연동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공인된 가격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가격 지표가 없는 경우가 많고 계약의 대상이나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 연구위원은 "단가연동 조항을 의무화하는 것은 가격이 책정되는 방식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라며 "이와 같은 가격에 대한 규제는 시장에 직접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적 효율성, 정책의 실효성, 부작용 등 측면에서 우려되는 부분에 대한 사례와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지 타진해 볼 필요가 있다"며 "올해 시범운영 결과는 스스로 참가하는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시장에 도입됐을 때의 효과를 예측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계약 형태를 강제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협상력 격차를 완화하고 남용 행위를 규율하는 것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표준적인 연동계약서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보험이나 선물 등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시장 친화적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