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수목토토일"…이 회사는 어떻게 '주 4일제' 안착시켰나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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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제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여러 선진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으로 업무 효율성이 개선되면서 '이제 주 4일만 일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죠."생산성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직원들의 탈진(번아웃)이었어요. 마치 전쟁을 준비하듯이 철저하게 주 4일제 도입을 준비했습니다." (정종빈 볼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볼트는 미국 IT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중 처음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한 회사다. 월화수목토토일. 금요일도 주말과 똑같이 쉰다. 원스톱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볼트는 주 4일제 시범운영 후인 지난 1월 시리즈E 투자 라운드에서 110억 달러(약 15조8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선 큰 도박입니다. 관건은 '업무시간을 20%나 줄이고도 과연 그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입니다.
미국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볼트는 지난해 주 4일제를 도입해 IT업계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듯 치밀한 전략을 거쳐 설계했다고 합니다. 볼트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근무하는 정종빈씨의 경험을 한경 긱스(Geeks)가 들려드립니다.
볼트는 글로벌 경기 위축 영향으로 지난 5월에 전 직원의 30% 가량을 감원했다. 그럼에도 주 4일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라이언 브레슬로 볼트 공동창업자는 "10시간을 일했든 60시간을 일했든 상관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회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측정한다"고 했다.빠르게 성장해야 할 스타트업이 빅테크도 아직 전격적으로 도입하지 않은 주 4일제에 도전한 배경은 무엇일까. 투자 경기 위축으로 실리콘밸리에 감원 폭풍이 부는 와중에도 왜 주 5일제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할까. 주 5일제에서 주 4일제로 넘어가는 과정을 직접 겪은 정종빈 볼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2022' 컨퍼런스에서 볼트의 주 4일제 도입 여정과 성과, 남은 과제를 공유했다.
볼트는 왜 '주 4일제'에 도전했을까
"시리즈C와 D라운드를 연달아 준비하면서 모든 직원이 영혼을 갈아넣었어요. 영혼을 갈아넣고 나니까 남은 게 없어요. 직원들이 너무 지쳐있었어요."정종빈 볼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스탠퍼드대 박사)는 지난해 7월 볼트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결제 서비스 업체인 볼트는 지난 1월 시리즈E 라운드에서 약 3억550만 달러(약 4400억원)를 투자받으면서 11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회사다. 볼트의 기업가치는 2020년 12월 시리즈C 라운드 때 8억5000만달러(약 1조220억원)에서 2021년 10월 시리즈 D가 마무리될 때는 60억달러(약 8조6000억원), 올해 1월 110억달러까지 빠르게 불었다. 하지만 연이은 투자 라운드에 직원들은 탈진한 상황이었다. "이러다가 죽겠다고 좀 쉬자고 했어요. 지난해 8월, 2주에 한번은 월요일에 쉬어보자고 했습니다."2주에 한번씩 월요일을 휴일(웰니스데이)로 정한 볼트. 그러다가 월요일에 쉬고 출근한 주엔 직원들의 분위기가 아예 다른 것을 알게 됐다. "월요일 쉬는 주와 안 쉬는 주가 번갈아 있었잖아요. 그런데 월요일에 쉬었던 주에 미팅을 하면 너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눈이 막 반짝반짝거리고 열심히 하려는 게 보였어요."
주 4일 근무제를 한번 시험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의 시작이었다. 9월을 준비 기간으로 두고 10월~12월 3개월 간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해보기로 했다. 3개월 간의 실험 뒤 다음 해 1월에 전사적으로 평가를 해서 최종적으로 주 4일제 도입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볼트는 생산성을 높이자는 '이기적인 이유'로 주 4일제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기업이 되자는 게 아니라 회사의 생산성을 높여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생산성이라는 건 인풋 대비 아웃풋을 어마어마하게 내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내가 하는 일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면서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었어요." 사자는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고 다음 사냥을 위해 쉰다. 주 4일제 도입을 통해 휴일을 늘리면 하루 일과를 질질 끄는 피곤한 좀비 대신 사자처럼 일하면서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였다. 그렇다고 근무 문화 자체를 뒤흔드는 주 4일제를 아무렇게나 갑자기 도입할 수는 없었다. 9월 한달간 마치 전쟁을 준비하듯이 준비했다. 정종빈 씨는 "군부대처럼 굉장히 체계적으로 계획을 하고 시범운영에 돌입했다"고 했다.
주 4일제를 도입하면서 바꾼 것들
① 미팅은 거절해도 괜찮다어떻게 4일을 일하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미팅부터 줄였다. "원래는 아침에 매니저와 일대일 미팅이 있고 그 다음에 보통 플래닝 미팅, 오늘 하루 동안 아니면 이번 한 주 동안 어떤 일들을 할지 미팅이 있고, 여러 프로젝트가 있으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는 디자이너나 다른 여러 사람들이과의 미팅이 있습니다. 저희는 시간을 뺏는 가장 큰 적 중에 하나가 미팅이라고 판단했어요."
4일제를 도입한 첫주에 CEO부터 신입 직원까지 기존 캘린더를 싹 다 밀어버렸다. 미팅 문화를 바꾸기 위해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정말 필요한 미팅이 있으면 당연히 잡지만 쓸데없는 미팅 일정은 다 지웠다. 누군가 미팅에 초대하더라도 우선 잘 생각해보고 내가 그 미팅에 가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면 CEO의 요청이라 할지라도 거절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미팅을 거절하는 것도 괜찮다는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미팅 시간을 줄이니 전투적으로 집중할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② 말보다는 글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그렇다고 같이 일하는 회사인데 미팅을 아예 없앨 수는 없는 법. 대신 얼굴 맞대고 말하는 것보다 글을 써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걸 우선순위로 하자고 정했다. '네가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네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내 시간까지 버리지 말고 글로 써 보내줘. 그럼 나도 네 시간 낭비 안하고 내 생각 정리해서 글로 보낼게.' 이런 약속이었다. 대면 미팅도 하되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켰다. 기존 30분으로 잡혀있던 기본 미팅 시간을 15분으로 줄였다. 5분짜리 짧은 미팅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개인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내가 일주일을 되돌아봤을 때 하루 포커스 타임이 3~4시간이 안된다고 하면 매니저와 얘기를 해서 미팅을 더 없애는 과정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각자의 목표와 우선순위는 글을 통해 공유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간에 이 팀원은 뭘 하고 있고 이 팀원은 언제까지 뭐가 나올 거다라는 기대치를 서로 알고 있도록 소통했습니다."
③ 주말에 일했다면 그건 잘한 게 아니다
금요일이나 주말에 일을 해야할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월요일에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목요일 퇴근 때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라면? 정종빈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연히 금요일에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금지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의 규칙 상 주말에 일한 건 일을 잘한 게 아니에요. 만약 주말에 일을 하는 상황이 생겼다면 그건 어디선가 프로세스가 실패한 겁니다."
CEO부터 이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만약 금요일에 일했다는 식으로 보고가 올라오면 CEO가 거기에 이렇게 댓글을 다는 식이다. '열심히 일해주셔서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금요일에는 일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선 리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이었나
볼트는 주 4일제가 생산성에 문제가 없고 직원 만족도도 올라갔다고 판단하고 있다. 3개월 시범운영 후인 지난 1월 직원 만족도 조사 결과 직원의 94%가 영구적으로 주 4일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9월 시범운영 직전 직원의 79%가 긍정적으로 봤던 것에서 비율이 높아졌다. 정종빈 씨도 처음엔 부정적이었다가 실제 주 4일제를 겪어보고 생각이 바뀐 사람 중 하나다. "처음엔 굉장히 회의적이었습니다. 이 회사에 제 옵션이 묶여있고,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야지 주 4일제 하면 이게 되겠냐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정말 일이 되더라고요. 내가 내 시간을 의식적으로 관리하면서 일을 하니까 일주일에 하루 덜 일해도 오히려 더 많은 업무를 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설문조사에 응한 직원의 84%가 주 4일이 주 5일보다 생산성이 높았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하반기 세웠던 목표(OKR ·Objectives and key results) 달성률은 주 5일제 당시 예상했던 70%에서 85%로 올랐다.
남은 문제는…
주 4일제의 중요한 도전 중 하나는 주 4일 근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직무까지 고려해야한다는 점이다. 볼트의 경우 대표적인 게 고객지원팀이었다. "우리는 주4일 근무하더라도 우리 고객들은 주 5일 근무를 합니다. 금요일에 서포트가 필요해서 연락이 왔는데 '우리는 문 닫았어' 할 수는 없잖아요." 볼트는 고객지원팀을 20% 증원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교대로 주4일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투자한 것이다. 다만 팀 간의 업무량 조절이나 업무 강도의 불균형은 계속 해결해야나갈 과제다. 주중 업무강도가 증가하면서 근무 외 친교 활동이 제한되는 문제도 있다.사실 볼트의 주 4일제는 아직도 실험 단계다. 스타트업인만큼 여러 위기를 겪을 수도 있고 나중에 다시 주 5일제로 복귀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정종빈 씨는 "볼트의 미래가 주4일 근무의 미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근무의 형태가, 특히 지식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노동 형태가 바뀐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냐. 어디서 일하냐, 몇 층에서 일하냐 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일하냐,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해졌다"며 "언제(when) 어디서(where)에서→ 어떻게(how) 얼마나(how much)로 일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참, 한가지 더
세계 최대 주 4일제 실험 진행 중… 결과는? 다음 달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 주 4일 근무제 실험이 대규모로 진행된다.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글로벌(4 Day Week Global)이 임금 100%를 유지하면서 근무시간은 80% 수준으로 줄이고 생산성은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진행하는 실험이다.
이미 영국에서 지난 4월부터 40여개 기업이 1차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20개 기업이 다음 달부터 실험에 들어가는 것이다. '세계 최대 주 4일 근무제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 기업과 회사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영국의 주4일 근무제 실험에 참여한 41개 기업 중 35개 기업(85%)이 오는 11월 말 주 4일 근무제 실험이 종료된 이후에도 이어갈 것이냐는 질문에 "가능성 있다" 또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답했다. 또 41개 기업 중 2개 기업을 제외한 모든 기업은 생산성이 동일하거나 개선됐다고 답했다. 6개 기업은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고 했다.
영국 한 마케팅 회사의 클레어 대니얼스 대표는 "처음에는 주 4일제에 회의적이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며 "실험 이후에도 주 4일제를 연장할 것"이라고 했다. 대니얼스 대표는 "미팅이나 출장 등 한 주의 20%를 차지했던 불필요한 업무를 줄였고 직원이 더 효율적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다만 과거의 모든 주 4일제 실험이 성공으로 끝나진 않았다. 영국 자선재단인 웰컴트러스트는 2019년 본사 직원 800명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주 4일제를 실험했지만 '운영상의 복잡성'을 이유로 전면 도입을 포기한 적 있다.
고은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