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처럼 그려낸 '왕실의 일상'…서양미술사서 가장 많이 연구된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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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1
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의 보물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
알카사르 궁전 화실 배경
공주와 시녀·시종 등
당시 실존인물 11명 등장
그림 속 보이는 인물은 9명뿐?
국왕부부는 거울 속에 비쳐
공주와 한 공간 있다는 의미
절대권력자인 국왕 지위를
관객의 위치로 내려놔
피카소에게도 영감 준 작품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의 보물인 이 그림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한 수수께끼 같은 구성, 인물의 순간 동작 포착, 빛의 효과에 따른 오묘한 색채 변화, 입체감이 뚜렷한 사실적 표현기법, 자유롭고 대담하며 신속한 붓질, 실제와 환상 공간의 공존 등 복합적 요소가 결합돼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불가사의한 그림으로 꼽힌다. 아울러 이 그림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논쟁을 낳고 가장 많이 분석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1656년께 작품이 세상에 선보인 이후 36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숱한 찬사가 이어졌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루카 지오다노는 1692년 “회화의 신학”으로,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초상화가 토머스 로렌스 경은 “예술의 철학”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미술사학자 조너선 브라운은 1986년 <벨라스케스: 화가와 궁정>이라는 책에서 “‘시녀들’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작품 중 하나로 예술사에서 이만큼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낸 그림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그린 것 중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극찬했다.
작품의 배경은 펠리페 4세 스페인 국왕의 마드리드 알카사르궁전에 있는 벨라스케스의 화실이다. 왕실 가족의 일상을 마치 스냅샷을 찍듯이 정확히 포착한 그룹 초상화에는 당시 실존 인물 11명이 등장한다. 그림 중앙의 은색 공단 드레스를 입은 긴 금발머리 여자아이는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의 딸인 마르가리타 공주. 그 주변에는 어린 왕녀를 수행하는 시녀, 왕실 소속 난쟁이, 호위병, 시종이 보인다. 화면 왼쪽의 시녀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빨간색 물병을 공주에게 건네주고, 손목에 빨간 리본이 달린 공단 옷을 입은 시녀는 왕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하고 있다. 당시 왕실 시녀는 지체 높은 귀부인들이 맡던 영예로운 직책이었다.시녀 뒤로 공주를 돌봐주는 샤프롱(보호자)이 호위병과 대화를 나누고, 화면 오른쪽의 여자 난쟁이는 그림 밖의 누군가를 응시한다. 남자 난쟁이는 졸고 있는 개의 등에 장난스럽게 발을 얹어놓는다. 방안 깊숙한 곳의 열린 문 뒤에는 왕비의 시종이 걸음을 멈춘 순간 동작을 취한 채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 왼쪽의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서 팔레트와 붓을 들고 작업하던 중 관객을 바라보는 남자는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벨라스케스다.
이 그림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진정한 미스터리는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과 감상자인 관객의 시선이다. 등장인물들은 화면 밖에 있는 관객을 응시하고 관객은 그림 속 인물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그림 속 등장인물과 화면 밖에 존재하는 관객과의 상호 교감, 스냅 사진을 예고한 순간 장면 포착, 그림 속 세계와 현실 세계가 공존하는 천재적인 조합은 이 작품이 수백 년 동안 관객의 의식을 사로잡은 결정적 요소가 됐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