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브런치 공연 마음껏 즐기세요"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 artchangki@sfac.or.kr
“당산나무 아래에서 공연하고 싶었어요.”

지난 4월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옛 동숭아트센터)의 1층 야외스퀘어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국악인 추다혜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민요를 기반으로 한 밴드 ‘씽씽’에서 보컬로 활동한 그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해 첫 앨범 ‘오늘 밤 당산나무 아래서’를 발표했다. 마을 초입구에서 주민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모셔진 당산나무와 추다혜의 공연엔 어떤 연관이 있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콘서트가 열린 곳도 대학로의 당산나무 역할을 했던 장소다. 추다혜는 30여 년간 대학로의 심장이었던 곳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며 ‘서울 스테이지11’의 시작을 알렸다.서울 스테이지11은 매월 첫째 목요일 오전 대학로센터와 금천예술공장, 문래예술공장, 서교예술실험센터 등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공간 11곳에서 열리는 예술공감 콘서트다. 처음에는 “서울의 곳곳에 흩어진 창작공간이 한데 모이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가 이후 “창작공간들이 ‘예술이 있는 오전’을 선사하겠다”는 그림으로 그려졌다. 매월 첫째 목요일 오전 11시가 되면 창작공간 11곳에서 동시에 콘서트가 펼쳐지는 것을 목표로 대학로센터가 처음 시작했고, 최근 창작공간 11곳이 모두 참여함으로써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서울 스테이지11은 브런치(brunch)나 마티네(matine) 콘서트처럼 낮에 열리는 비슷한 공연과는 다르다. 우선 공연을 보기 위해 실내 공연장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장르별로 운영 중인 창작공간 11곳은 오전 일과를 마친 직장인과 주민을 위해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공연으로 야외 콘서트를 준비했다. 관람객의 반응과 기대는 공연 정보를 알리는 누리집에서 확인됐다. 공연 보름 전에 개설되는 관람권 예매 창구는 문화센터의 인기 강좌를 신청하는 창구 못지않게 붐볐다. 공연 현장 당일에는 온라인으로 예매하지 못한 이들의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클래식, 무용, 국악, 재즈 등 현장 예술가들은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소멸돼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예술가만 떠안는 것이 아니라 향유자에게도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은 대안으로 영상화와 생중계를 통한 온라인 공연 콘텐츠를 쏟아냈지만 현장예술의 아우라가 빠진 허전함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서울 스테이지11은 스크린을 통해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오감으로 공연을 즐기는 방법을 제시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갇힌 문화예술계가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