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새끼줄을 뱀이라 우기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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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6
달밤에 새끼를 뱀으로 오인
경험이 인식 방해하기 때문
尹 비속어 논란 핵심은 자막 조작
'바이든''(미국)국회"로 오인 유도
데이터변조는 언론자유 아냐
거짓말·선동만 부추길 뿐
사심 버리고 국익 관점서 봐야
서화동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비속어 논란’을 보면서 퍼뜩 든 생각이 새끼줄과 뱀의 비유였다. 사태의 시작은 단순했다.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미국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짧은 환담을 마치고 나오던 윤 대통령이 이동 중 혼잣말처럼 내뱉은 한마디였다. 공식 연설도, 대담도, 대화도 아닌데 공동 취재 중이던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다. 대통령 본인은 기억에 없다고 한다지만 여기서 ××는 비속어임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OOOO은 행사장의 소음 때문에 무슨 말인지 뚜렷하지 않다.그런데 MBC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를 가장 먼저 보도하면서 불확실한 OOOO을 ‘바이든은’으로 해석한 게 문제였다. 현장 기자들 사이에선 바이든으로 들린다는 의견이 많았다지만, 그런 판단만으로 영상에 자막을 달고 내보낸 건 경솔했고 성급했다. 윤 대통령은 ‘1억달러를 글로벌 펀드에 공여하기로 방금 약속했는데 국회에서 거대 야당이 승인해주지 않으면 창피해서 어쩌나’라는 취지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맥락상 여기서 바이든이 나올 이유가 없다. 게다가 한국은 국회, 미국은 의회다. 그런데도 자막에 괄호까지 넣어서 ‘(미국) 국회’라고 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MBC에 이어 다른 방송사와 신문들도 속보 경쟁을 하느라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그날 밤 11시에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첫 보도를 통해 ‘바이든’으로 각인된 뒤엔 바이든으로 들리기 쉽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비속어로 폄하했다는 자극적이고 휘발성 높은 뉴스는 국민의 뇌리에 커다란 뱀과 자라를 심어놓았다.
지난 29일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윤 대통령을 만나 한·미 동맹 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미국의 인플레감축법(IRA)에 대해서는 법 시행 과정에서 한국 측 우려 해소 방안을 찾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이른바 비속어 논란에 대해 “미국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다”며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뜻하는 ‘disinformation’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고의성이 없이 실수로 잘못 알려진 정보인 ‘misinformation’과 달리 ‘disinformation’은 고의성이 있는 악의적 엉터리 정보라는 뜻이다. 성 교수는 ‘disinformation’에 관대한 사회는 결국 선동의 희생양이 된다고 강조했다.
3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4%로 떨어졌다. 자막 왜곡과 ‘무능·참사’ 프레임은 일단 성공한 모양새다. 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성공, 국가의 성공인가. 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3고(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국익을 생각한다면 편견과 사심을 버리고 뱀과 새끼줄, 자라와 솥뚜껑을 구별할 줄 아는 눈부터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