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리한 탄소중립은 세계를 파산시킨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안보 위기
실현가능한 에너지 정책 필요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8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에 ‘탄소중립이 영국을 파산시킨다’는 사설이 게재됐다. 영국을 포함한 전 유럽 시민이 에너지 인플레이션으로 파산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인데, 점점 진실이 돼 가고 있다. 영국 일반 가정의 에너지 청구서가 연간 세 배로 오르면서 중위소득자 소득의 10%가 넘는 비용을 오로지 에너지에만 지불해야 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프랑스는 전기요금으로만 매달 ㎿h당 1000유로(약 140만원)를 내야 하는 치명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선진국인 독일도 매달 전기요금이 ㎿h당 900유로로 인상돼 올겨울이 무사히 지나갈 것 같지 않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유럽에서 벌어지는 것일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7개월가량 지났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우리 국민은 이런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전쟁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탄소중립이라는 불씨가 전쟁이라는 기름을 만난 것뿐이다. 독일은 탈원전과 탈석탄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일변도의 친환경 정책을 추진한 동시에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수입을 50%까지 확대했다. 에너지 안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전혀 없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러시아에 ‘에너지 목숨’을 내주고 만 것이다. 국민이 파산에 이를 지경인 유럽은 민주 선거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극우정당이 득세하며 이탈리아, 불가리아, 헝가리 등은 이미 친러시아 정권으로 변모하고 있다. 결국 러시아는 이 전쟁을 겨울까지 끌고 가서 유럽연합(EU)이 사분오열하는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대기업 증세와 재정 확장을 통한 친환경 재생에너지 확대를 부르짖고 있다. 또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중국의 친환경 산업에 제동을 걸기 위해 자국 내 생산만을 인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와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도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확대해야 하는데, IRA는 수백조원 규모의 재정 확대를 하면서 친환경 투자를 하라고 외친다. 반면 미국은 셰일가스 생산을 늘려 유럽에 천연가스 수출을 늘리고, 무기도 팔아 일거양득의 이익을 누리며 탄소중립에 역행하고 있다.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IRA 정책은 결국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실패하고, 미 중앙은행(Fed)은 금리를 급격히 인상해 기업과 미국민의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다. 결국 탄소중립은 미국 시민도 파산하게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1990년 이후 인플레이션 타게팅 정책으로 잘 관리되며 봉인돼 있던 시절이 끝나고, 탄소중립이라는 쓰나미가 인플레이션이란 괴물의 봉인을 해제해버렸다. 이번 탄소중립발 인플레이션율을 8%대에서 2%대로 다시 봉인하려면 Fed와 경쟁하려 하지 말고 고금리를 순순히 수용해야 한다. Fed가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을 통해 국민의 고통이 수반돼야 인플레이션이란 괴물이 퇴치될 것이다. 동시에 탄소중립이라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속도 조절을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다. 자발적으로 에너지 수요를 절감하고 화석연료를 적절히 분배하면서 지구온난화에 적응할 때만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우리도 지난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국가 재정 상황과 미래 세대의 부채를 고려해 실현 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