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생활상담관 1명에 병사 943명…"우린 상담기계 아냐"

기간제 신분에 인사평가 연간 18번까지…'고용불안' 스트레스
담당 부대서 극단적 선택시 상담 안했어도 감점
군에서 고충을 상담하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 1명이 900명이 넘는 병사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업무부담과 고용불안 스트레스 탓에 상담관 5명 중 1명은 본인이 심리상담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는 군복무 부적응자로 발생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008년 전군으로 확대됐다.

올해 6월 기준 630명의 상담관이 전국 각지 부대에 배치됐다. 3일 공공운수노조와 시민단체 일과건강이 상담관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상담관 1명이 담당하는 병사는 평균 943.7명이었다.

2천500명까지 맡고 있다고 응답한 상담관도 있었다.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42.4시간이었다. 상담관 대다수가 기간제 신분이어서 고용불안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7%(148명)는 무기계약직 신분이고, 나머지 63%(252명)는 기간제로 채용돼 있었다.

계약 연장을 위해 해마다 적게는 6회, 많게는 18회 받는 인사평가도 고용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특히 부대 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근무성적에 반영하는 인사제도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방부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운영에 관한 훈령' 제 27조 4항은 '자살자가 발생한 부대의 상담관 근무성적 평가 시 상담관의 사고 예방 활동 관련 사항을 엄정하게 평가해 근무 성적에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조사 결과 자신이 상담한 부대 소속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전체의 17.5%(70명), 상담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속한 부대에서 그런 사례가 나온 경우는 43.3%%(173명)로 집계됐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훈령은 지휘관의 책임을 계약직인 전문상담관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상담 여부와 관계없이 극단적 선택 사례가 나오면 근무평가에서 감점해 고용불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울증 선별 검사' 결과 응답자의 18.8%(75명)는 전문적 심리 상담이 필요한 상태로 드러났다.

병사의 심리를 보살펴야 할 상담관이 오히려 심리 상담이 필요한 처지가 된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는 국군의 날(10월 1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한 상담관은 "전문상담관은 상담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고강도 감정노동자인 상담관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상담관의 정신·신체적 소진을 예방하는 프로그램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4일에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의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