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성공을 담보하는 집중력은 간절함에서 나온다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버지가 콩기름 병마개를 발명했다. 기름을 따를 때 찔끔 흘러내리는 건 아까워서라기보다 손에 묻으니 짜증 나서다. 어머니가 기름을 부을 적마다 손을 몇 번씩이나 닦아내는 걸 본 아버지가 병마개를 고쳐주려고 나섰다. 알코올램프를 사다 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손으로 만져가며 병 주둥이에 모양을 냈다. 마개 끝을 길쭉하게 혹은 더 짤막하게, 뾰족하거나 세모꼴로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마개를 끼워 기름을 부었으나 모두 허사였다. 기름이 여전히 병 주둥이를 타고 흘렀다.

며칠을 반복해도 실험은 언제나 실패했다. 오기가 생긴 아버지는 일을 멈추고 마개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콩기름 병뿐 아니라 빈 기름병은 모두 어머니가 수거해 날랐다. 어느 기름이나 따른 끝에는 지질하게 밖으로 흘러내렸다. 지천에 널린 동네 기름병을 수거해오는 것은 그렇다 쳐도 버리는 게 더 어려웠다. 많이 태웠지만 마당은 온통 빈 기름병 투성이었다. 더욱이 실험하다 버린 기름이 부엌에 넘쳐나자 어머니는 아무나 발명하는 줄 아느냐며 투덜댔다. 생전 처음 보는 플라스틱 관련 책, 유체역학이란 책도 독파하며 실험에 몰두하던 아버지도 부아가 나서 실험도구를 불태우기도 했다. 어느 날 밤새 꼬박 연구하던 아버지가 잠깐 조는 사이 기름병을 넘어뜨렸다. 쓰러진 기름병에서 흘러나오던 기름이 멈췄고 더는 지질하게 새어 나오지 않았다. 2년이나 걸린 실험은 무위에 그쳤지만 발명은 순간에 이루어졌고, 간단했다. 병마개를 넓혀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따르는 양이 많아지면 장력에 의해 기름이 똑 끊어지며 더 흐르지 않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2년여 만에 그렇게 우연히 흐르지 않는 병마개를 발명했다. 특허는 큰 식용유 회사에 팔려 1991년 ‘알뜰 마개’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아버지는 “발명은 집중력의 소산(所産)이다. 누구에게나 집중력이 있다. 집중력은 의지에서 나온다. 의지는 바가지와 같다. 깨진 바가지로는 물을 뜨지 못한다. 의지력을 만드는 게 간절함이다. 결국, 간절함이 집중력을 높인다”라고 말씀하셨다. 덧붙여 그날 인용한 고사성어가 ‘중석몰촉(中石沒鏃)’이다.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다는 말이다. ‘정신을 집중해 온 힘을 다하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있다’라는 뜻이다.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나온다. 이 장군은 한무제(漢武帝) 때 이광(李廣)이다.

이광은 궁술과 기마술에 남다른 재주가 있는 맹장이었다. 키보다 팔이 원숭이처럼 긴 그는 활 쏘는 방법이 독특했다. 적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명중시킬 수 없겠다고 판단하면 애초부터 활을 쏘지 않았다. 이광이 사냥하러 갔다가 풀숲에 잠자는 호랑이를 보고 급히 화살을 쏘았다. 명중했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니 그가 맞힌 것은 화살이 깊이 박혀 있는 호랑이처럼 생긴 바위였다. 다시 화살을 쏘았으나 이번에는 화살이 퉁겨져 나왔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중력은 한 가지 일에 마음이나 주의를 기울이는 힘이다. 집중력은 한 곳만 바라봐야 하고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생긴다. 그래서 얻기 쉽지 않다. 집중하는 힘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간절함에서 나오고 그 간절함은 결핍에서 생긴다. 아이가 크게 우는 것도 결핍을 알리는 간절함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아이가 너무 큰 소리로 울어 스스로도 놀라듯 간절하게 소리쳐 내 잠자는 뇌를 깨워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게 집중력이다.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렵다. 잠 안 재우는 고문을 당하면 오직 자고 싶은 욕망만 있게 마련인 것처럼 집중력을 방해하는 모든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레미제라블’과 ‘노트르담 꼽추’를 쓴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오죽했으면 글 쓸 때 집중하려고 종이와 펜만 들고 서재에 알몸으로 들어갔다고도 한다. 집중력을 키우는 간절함은 평생 가꾸어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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