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보다 기억 남는다…창업자 4人이 말하는 투자자와 인연 [긱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첫 투자자는 매우 특별합니다. 처음이라 서툴지만 어느때 보다 절실한 순간, 내 손을 잡아준 사람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첫 투자자들과 인연을 맺었을까요?
핀테크 스타트업 렌딧의 김성준 대표가 다른 동료, 선·후배 창업자들에게 투자자와의 첫 만남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타트업=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가 무척이나 어려워진 시기라고 한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스타트업 혹한기’라는 기사가 나오고, 국내외의 여러 벤처캐피탈리스트들 역시 긴 호흡을 갖고 경영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시장 환경에 의한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투자 유치를 위한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생애 첫 투자 유치를 위한 여정은 서투름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업계에는 투자자와 창업자 간의 훈훈한 미담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너무나 드라마 같은 아름다운 에피소드들도 적지 않다. 이번 글에서는 필자를 포함해 창업 후 약 10여년 간 수많은 투자자와의 만남을 가져온 쏘카 박재욱 대표, 핀다 이혜민 대표와 지난 5년 간 총 300여 명의 창업자를 만난 스타트업 미디어 EO의 김태용 대표의 창업 후 첫 투자 유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창업자들의 생생한 첫 투자자 미팅과 만남의 이야기가 많은 예비 창업자와 첫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는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0년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소프트뱅크의 강동석 부사장님이 학교 창업 동아리에 오셔서 강연을 하셨는데, 친구 한 명이 다녀와서 나중에 창업할 생각이라면 이 분에게 한 번 연락해보라며 부사장님 명함을 주더군요. 바로 메일을 보냈죠. 졸업한 뒤 창업할 생각인데 직접 찾아 뵙고 조언을 듣고 싶다고요. 두 달 간 답변이 없으셨어요.” (박재욱 쏘카 대표, VCNC 창업자)

“핀다의 첫 투자자는 국내의 매쉬업엔젤스, 퓨처플레이, 그리고 미국의 500글로벌(500 Global)이에요. 그런데 매쉬업엔젤스의 이택경 대표님도, 퓨처플레이의 류중희 대표님도 처음에는 대출 받기가 정말 그렇게 어렵냐, 또 대출 받으려는 사람이 정말 그렇게 많냐면서 핀다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셨어요. “ (핀다 이혜민 대표)

콜드 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인연..."안될것 같아도 해봐라"

이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쏘카 박재욱 대표와 핀다 이혜민 대표에게도 창업 후 첫 투자 유치의 과정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하지만 2011년 VCNC를 설립하고 커플앱 비트윈을 선보인 박재욱 대표는 결국 소프트뱅크벤처스(현 소프트뱅크 아시아)의 강동석 부사장을 만나 인생 첫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창업을 하기 전 선배로서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보냈던 콜드 메일이 인연의 시작이 된 것이다.

VCNC는 비트윈을 개발하기 전 도전했던 태블릿 PC용 앱 2개를 모두 성공시키지 못했다. 강 부사장은 박 대표가 이 과정을 헤치고 나와 비트윈을 다시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알고 지낸지 10개월이 되었을 때 10억원을 투자했다. VCNC의 세번째 서비스인 비트윈이 출시되기 직전이었다. 박재욱 대표는 강 부사장이 VCNC가 2번의 실패를 딛고 빠르게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기 때문에 높이 평가해 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이야기 했다.

후에 한 인터뷰에서 강 부사장은 “VCNC의 첫번째 서비스가 잘 안 될 것 같긴 했지만, 정 출시하고 싶으면 해보시라”고 조언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실패도 해 봐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소프트뱅크 내부에서는 투자 결정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커플앱 시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비트윈 출시 후 5개월 만에 실리콘밸리에서 카피캣이 나오는 것을 본 강 부사장은 보편적으로 누구나 필요로 하는 서비스라는 증명이 된 것이라고 힘을 실어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비트윈은 정식 출시한 2012년 한 해 동안 약 200만 회 다운로드가 되는 성공을 거두었다."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건데?" 3개월 이상 토론하며 설득

핀다의 이혜민 대표는 투자자가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며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끝에 첫 투자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만났던 매쉬업엔젤스 이택경 대표와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가 ‘대출 시장의 문제’라는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보수적인 금융 산업의 특성 탓에 국내에서 발전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혜민 대표는 평소 신뢰가 깊었던 이택경 대표와 류중희 대표의 날카로운 의견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해 문제점을 자세히 파악해 나가는 한편, 지속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해 미팅을 이어 갔다. 투자 유치는 이렇게 토론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투자자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지치지 않고 답안을 내놓는 과정이 약 3개월 이상 이어지자, ‘그러면 이제 그 문제를 같이 한 번 풀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이혜민 대표는 “평소에도 나와 다른 의견을 귀담아 듣고 이야기를 잘 나누는 성격”이라며, “이러한 점이 창업 후 문제에 부딪혀도 차근차근 잘 풀어내며 앞으로 나가겠다는 강점으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번 거절 당하고도 연락...인내심 인정 받았다

필자 역시 렌딧의 첫 투자자인 알토스벤처스의 한 킴 대표에게 두 차례나 투자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렌딧을 창업하기 전인 2011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던 스타일세즈(StyleSays)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한 킴 대표는 온라인 패션커머스의 재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스타일세즈의 비전에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 투자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연이 이어지려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2015년 2월 한국에 돌아와 렌딧 창업을 준비하며 다시 한 킴 대표를 찾아 갔을 때에는 미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2014년 12월 미국의 대표적인 P2P금융 스타트업인 렌딩클럽이 업계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한 것이 호재였던 것.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서 로켓 성장을 하고 있는 P2P금융산업에 알토스벤처스 역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한 킴 대표는 한국에서도 렌딩클럽과 같은 스타트업이 나타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P2P금융 창업팀을 찾고 있었다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필자 역시 P2P금융의 최대 강국인 미국에서 이 산업의 성장 과정을 충분히 지켜본 알토스벤처스로부터 첫 투자를 유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 킴 대표를 찾아갔던 터였다.

산업의 비전에 대한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되었고, 무엇보다 렌딧 창업팀에 대한 한 킴 대표의 신뢰가 두터웠다. 알토스벤처스가 투자 검토를 시작하고 클로징하기까지 채 두 달의 시간도 걸리지 않을만큼 빠르게 렌딧의 첫 투자가 마무리 되었다. 시기적으로 기가 막힌 첫 투자자와의 만남이었다.

한 킴 대표는 이후 P2P금융은 스타트업이지만 보수적인 금융 산업인만큼 규제 문제 등을 끊임없이 해결해 나가며 잘 버티고 헤쳐나갈 수 있는 자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필자가 그러한 특징을 가진 창업자로 보였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후에도 꾸준히 소식을 전하고 인연을 이어왔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안정 원하던 창업자에 용기 건낸 투자자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EO의 김태용 대표는 첫 투자자인 퓨처플레이의 류중희 대표가 먼저 투자를 제안한 경우다. 오히려 김태용 대표가 수 개월 간 고민한 끝에 투자를 받았다. 2~3번 창업 실패 끝에 EO 유튜브 채널을 성장시키면서 경제적 안정을 찾고 있던 시기였던 탓에 다시 투자를 받고 큰 책임감을 느끼며 창업하는 것이 두려웠던 때문이다.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2주에 한 번씩 만나 방송도 같이 해 보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류중희 대표는 쇼미더머니가 힙합씬을 일으켰듯이 EO가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며 김태용 대표와 EO의 비전에 큰 공감을 지속적으로 표했다. 결국 처음 투자 제안을 받은 후 3개월 뒤인 2020년 5월에 EO는 퓨처플레이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박재욱 쏘카 창업자
쏘카의 박재욱 대표는 “첫 투자를 유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의 본질을 관통하는 제품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풀려고 하는 문제에 더 집중하고, 사용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잘 전달할 지 고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태용 이오스튜디오 대표
EO 스튜디오의 김태용 대표는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투자자의 시간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스스로 매력적인 창업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바쁜 투자자라도 기꺼이 시간을 내서 만나고 싶은 창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표는 매력있는 창업자는 결국 당당하고, 큰 꿈을 꾸며, 만날 때 마다 사업이 진척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박재욱 대표의 조언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조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투자자로부터 거절을 당하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더라도 너무 크게 상심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가 실제로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투자자가 관심없거나 또는 아직 잘 모르는 분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핀다의 이혜민 대표 역시 끈기있게 계속 도전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창업 초기 스타트업인 경우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점을 도출했을 뿐 이제 막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는 단계인 만큼,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과정과 모습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투자를 결정하는 사람이나 투자사가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필자가 2011년 스타일세즈(StyleSays)를 창업한 뒤 가장 먼저 만난 엔젤 투자자는 당시 아블라컴퍼니의 창업자였던 노정석 대표(현 비팩토리 대표)였다. 20대 초반에 코스닥 상장, 아시아 스타트업 최초로 구글에 회사를 매각한 연쇄창업가였지만 아직 30대 중반인 젊은 창업자였다. 노정석 대표는 첫 만남에서 15분 만에 스타일세즈의 첫 엔젤투자자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후 만난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노정석 대표가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표했다. 렌딧의 첫 투자를 알토스벤처스에서 받은 후에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창업자 스스로가 투자자 만큼 투자 계약서 상의 용어나 조건, 개념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는 점이다. 사실 투자 계약에서 오가는 문서들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 많다. 더구나 한글이 아닌 영문 계약서인 경우도 다반사다. 기본적인 정보는 구글링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국내에 번역본이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Secrets to Raising Capital (Michael S. Manahan 저, 2011년 출간)’과 ‘The Art of Startup Fundraising (Alehandro Cremades 등 공저, 2016년 출간)’ 등 크게 도움을 받은 2권의 책을 소개한다.

이제 막 스타트업을 시작한 초기 창업자는 아이디어 단계인 사업도 구체화해야 하고, 팀 빌딩도 해야 하며, 회사 경영에 필요한 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진행해 나가야 한다. 때문에 투자 유치가 계획한 기간보다 너무 늘어진다면 자칫 다른 중요한 일들을 놓칠 수 있다. 3개월 전에는 투자하겠다고 했던 투자자가 3개월 후에는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투자 모멘텀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투자 유치 과정은 계획한 시기에 집중해서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Never give up!
사진=김성준 렌딧 대표
렌딧 | 김성준 대표

3차례의 창업 경험을 가진 연쇄 창업가. 첫 창업은 2009년에 했던 기부의 일상화를 위한 사회적 기업 1/2 프로젝트. 두번째는 2011년 스탠포드 대학원 재학 중 창업 수업에서 만난 팀과 함께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던 스타일세즈(StyleSays)다. 세번째 창업한 렌딧은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한국에 돌아와 개인 대출을 해 본 경험을 통해, 중금리대출이 부재하다는 사회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한 회사다.대학 시절이었던 2006년에 2012년 세계적인 IT기업인 인텔에 인수된 AI 스타트업 올라웍스의 초기 디자이너로 참여하며, 스타트업이라는 미래에 눈떴다.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창업가 정신과 혁신적인 조직의 기업 문화를 렌딧에 이식하고 적용, 전통적인 금융 인재들과 혁신적인 IT 인재들이 성공적으로 융합한 테크핀(TechFin) 조직으로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서울과고를 졸헙하고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스탠포드대학원 기계과 프로덕트 디자인 석사 전공 도중 자퇴하고 스타일세즈(StyleSays)를 창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