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민 납득 못시키는 과학방역

질병청, 실내 마스크 근거 못대
일각에선 국민 자율에 맡겨야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정부가 과학·정밀방역을 내세우고 있지만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자율방역’을 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자율’은 빠졌다.”

정부가 ‘실내 마스크 의무 조치’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한 의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질병관리청은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올겨울 코로나19 유행 후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향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내년 3월께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던 이기일 보건복지부 2차관의 전망과 판단이 같았다.미국 유럽 등에선 마스크 착용 의무를 없앤 지 오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실내 마스크 해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계에선 아이들만이라도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령기 아이들이 마스크 탓에 정서 교감을 제대로 못해 인지 능력 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이들은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중증으로 악화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도 고려한 요구다. 여당도 당정회의를 통해 이를 정식 건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 방침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과학적 근거’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전파 차단’보다 ‘인명 피해 최소화’에 집중하겠다던 정부 방역정책에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제가 왜 필요한지 알려주는 구체적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다. 중증 위험이 낮은 아이들이 왜 인지 능력 저하 위험을 감수하고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빠졌다. 방역당국은 “과학방역은 전문가 의견을 따르는 것”이라는 원론적 대답만 내놓을 뿐이었다.

‘이르면 내년 3월 마스크를 벗을 것’이란 정부 전망은 ‘2주 뒤 거리두기를 풀 수 있을 것’이라던 문재인 정부 ‘희망고문’의 데자뷔였다. 정부 방역정책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방역당국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말은 ‘2년간 쌓인 경험’이다. “‘정치방역’ 탓에 국내 코로나19 대응은 실패했다”고 비판했던 현 정부가 내놓는 과학적 근거가 ‘경험’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코로나19 관련 입국 규제가 사라지고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없어졌다. 하지만 국내 확진자 감소세는 유지되고 있다. 국민 상당수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방역지침을 지키고 있어서다. ‘실내 마스크 의무’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근거가 미흡하다면 국민 자율에 맡기면 된다. 2년 넘게 팬데믹을 겪으며 한국의 치명률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춘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