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식문화 조화시킨 '코리안 스테이크 하우스' 뉴욕서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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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레스토랑 '꽃' 사이먼 김 대표“재미동포지만, 한국인도 미국인도 되지 못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좌절하던 시절이 있었죠. 이제는 양국의 식문화를 조화시킨 ‘코리안 스테이크 하우스’가 미국에서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몇분 만에 예약 마감…마이애미에 2호점
지난달 말 미국 뉴욕에서 ‘테이스트 오브 아시아’ 행사를 공동 주최한 사이먼 김(김시준) 꽃(cote) 대표(사진)는 “북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다른 대륙으로 진출을 앞두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017년 문을 연 꽃은 2021년부터 미쉐린 1스타를 받는 등 뉴욕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식당으로 자리 잡았다.이 레스토랑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코리안 바비큐’가 아니라 ‘코리안 스테이크’라는 콘셉트를 처음 도입했다. 불판에 고기를 구워 쌈에 싸 먹는 방식이나 계란찜과 된장찌개, 김치, 밥 등 반찬을 풍성하게 곁들여 먹는 한국의 식문화를 그대로 적용했다. 매장 분위기는 뉴욕의 밤거리를 한껏 느낄 수 있게 꾸몄다. 어두운 분위기에 네온사인을 가미해 고급스러운 미국식 인테리어를 표방했다.
어떤 고급 레스토랑보다 풍성한 와인, 칵테일 리스트를 마련하는데도 공을 들였다. 김 대표는 “서양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드라이에이징 룸(건조 숙성 공간)’에도 한국의 ‘정육점’ 느낌을 더했다”며 “붉은빛 아래 숙성되는 고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새로운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색다름’은 현지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꽃은 한 달 전에만 예약받고, 그마저 몇 분 내 모두 마감된다. 김 대표는 “외국인과 한국인 고객 비중이 8 대 2 정도”라며 “꽃이 인기를 끌자 미국 다른 지역에서도 ‘코리안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이름의 식당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한국의 ‘2차 문화’도 이곳에선 경쟁력이 됐다. 스테이크 레스토랑인 1층에서 계단을 한 층만 내려가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모던한 칵테일바 ‘언더 꽃(under cote)’이 펼쳐진다. 노르웨이 바텐더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화려한 칵테일을 제조해 건넨다. 홍삼을 넣어 만든 한국식 ‘에너지 칵테일’은 에너지드링크에 술을 섞어 먹는 외국인들의 문화를 반영한 시그니처 드링크 중 하나다.
꽃은 뉴욕에서의 호응을 바탕으로 미국 마이애미에도 2호점을 열었다. 이 지점 역시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는 등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또 조만간 중남미, 유럽 등 다른 대륙에도 새 지점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그는 뉴욕 현지의 인기 아시안 레스토랑을 규합해 ‘테이스트오브 아시아’ 행사도 2년째 공동 주최 중이다.
‘아시아의 맛’으로 코로나 19 이후의 아시안 혐오 범죄를 극복하자는 취지다.미국에서 외식 사업에 도전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조언을 건넸다. 김 대표는 “13살 때 뉴욕으로 이민을 와 한식당을 운영하시는 어머니의 일을 도우며 자랐다”며 “바닥에서부터 어렵게 성공한 어머니를 보며 반드시 성공하자는 일념으로 시작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등 수많은 설움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계 셰프들과 외식 사업가들이 약진하는 등 ‘한식의 글로벌화’가 몇년새 가시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한국에서는 유행하는 식당이 생기면 단기에 우후죽순 따라서 만드는 경향이 크죠. 저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있었기에 저만의 레스토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듯, ‘가장 나다운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또 다른 ‘코리안 스테이크 하우스’를 앞으로 만들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정소람 특파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