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문화'의 원조…독일 여성은 '오후 커피 10잔' 마셨죠

Cover Story

베를린장벽 무너진 곳에서
예술가들이 꽃피운 커피

1777년 프리드리히 2세
"커피 수입으로 국부 유출
맥주를 더 마셔라" 금지령
일반인은 못 사 사치품 돼

'커피 마실 자유' 얻자 혁신
세계 최초 카페인 제거 기술
핸드드립 커피 도구 등 개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것은 소설 제목이 아니다. 우리의 욕망과 본능에 관한 절대 불변의 문장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나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이런 본능은 때론 엄청난 혁신과 거대한 변화로 이어진다. ‘커피의 성지’로 거듭난 베를린이 딱 그랬다.
독일의 수도,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베를린은 오랜 옛날 ‘커피 금지령’이 내려졌던 곳이다.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온 바리스타와 실험정신이 뛰어난 카페 주인들이 스페셜티 커피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한 도시의 카페들이 그곳의 정서와 문화를 담아낸다면, 베를린 카페는 ‘절제된 융합’과 ‘거대한 포용’으로 압축된다.

남자들의 맥주, 여자들의 커피

유럽 최초로 커피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사람은 독일인이다. 독일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레온하르트 라우볼트는 1582년 중동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동방여행>이라는 책에서 “아랍 사람들은 ‘차우베(chaube)’라 부르는 치료 효과가 있는 음료를 마신다”고 기록했다. 커피를 마시는 문화는 이보다 약 100년 더 지나 전파됐다. 1680년께 영국 상인이 함부르크에 독일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만들면서다. 영국보다도 10년이나 늦었다.

독일에 커피 문화가 늦게 전파된 이유는 커피를 재배할 식민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비싼 가격에 커피를 수입해야 했다. 커피 가격이 비쌌지만 독일에서 대유행한 데는 독일 여성들의 공이 컸다. 남성들이 일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에 빠져 있었다면, 여성들은 커피로 대신했다. 카페(커피하우스)가 대중화되기 전엔 빵집에서 연한 커피를 마시며 종일 대화를 즐기는 문화도 생겼다.20세기 초 독일 여성들이 아침 식사 후 친구나 지인들과 만나 커피와 케이크를 나누고, 이야기를 즐기던 카페클라취(Kaffeeklatsch) 문화는 지금의 브런치 문화의 원조격이라고 할까. 당시 독일 여성들은 오후에만 커피를 10잔 이상 마셨다고 전해진다.

통제와 결핍이 만들어낸 커피 레볼루션

커피가 일상재가 되던 1777년 프리드리히 2세 프로이센 국왕은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 수입 커피 때문에 돈이 외국으로 다 빠져나간다는 이유에서다. “커피는 제발 그만 마시고, 맥주를 더 마시라”는 성명서를 냈다. 생각해보면 이 금지령은 그 스스로도 엄청난 결단이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모닝커피로 최소 일곱 잔, 오후에 한 주전자의 커피를 다 비울 만큼 커피 애호가였다.

커피 금지령 당시 거리 곳곳에서 커피 냄새만 맡고 다니는 공무원이 있었고, 혹여 몰래 마시다 걸리면 감옥에 가는 일도 허다했다. 커피를 못 마시게 하자 암거래 시장은 더 커졌고, 결국 국민의 반대로 커피 금지령은 철회됐다. 이후 귀족들에게만 ‘로스팅 허가권’이 주어졌다. 커피 세금은 치솟아 일반인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사치품이 됐다.금지령이 내려지자 혁신의 DNA가 고개를 들었다. 여성들은 최대한 커피 맛에 가까운 음료를 만들기 위해 치커리를 볶아 커피처럼 내린 ‘치커리 커피’를 발명(?)했다. 뒤늦게 커피 마실 자유를 얻은 독일인들은 관련 기술로 압도적 우위를 점령했다. 세계 최초로 카페인 제거 기술이 개발됐고, 열풍식 로스터기가 처음 등장했으며, 핸드드립 커피 도구도 독일의 주부 밀리타 벤츠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베를린의 색이 담긴 스페셜티 커피

독일의 우아하고 아름답던 카페들은 1940년대 전쟁을 겪으며 많이 사라졌다. 파괴가 만든 열망 때문일까. 현재 독일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5.2㎏으로 세계 7위, ‘커피의 나라’로 불리는 이탈리아(11위)보다도 많다.

베를린은 1990년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마주하며 쉼 없이 변화했다. 베를린엔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의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이들과 함께 카페 문화도 자라났다. 베를린의 스페셜티 커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은 보난자커피다. 한국계 독일인 최유미 씨가 키덕 레우스와 2006년 공동 창업했다.보난자커피는 “더러운 장소, 노동착취의 환경에선 고품질 커피를 생산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보난자커피는 ‘생산지에서 공정하게 커피가 생산되는지, 생산지의 주변 환경, 특히 물과 생산 설비의 청결도가 괜찮은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베를린에 다섯 곳의 카페를 운영하는 보난자커피는 서울에도 최근 매장을 냈다.

2006년부터 보난자커피의 플래그십 매장으로 운영되는 곳은 프렌츠라우어베르크에 있는 로스터리다. 붉은 벽돌 공장 건물에 있어 찾기 쉽지 않지만 안뜰로 들어가면 초록의 식물과 붐비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세계 각지에서 온 7종의 커피 원두가 다채롭다. 우유가 조금 들어간 피콜로는 보난자커피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다.

보난자 이후 늘어난 커피 실험실

베를린 이색 카페 벤라힘의 커피
베를린 중심의 유서 깊은 상업지구 하케셰 회페엔 2015년 커피 애호가를 끌어모으는 카페 벤라힘이 등장했다. 아르누보 시대 미적 감각으로 건축된 건물들 사이 안뜰에 자리한 이 카페는 튀니지 태생 벤 라힘이 열었다. 라힘은 튀니지에서 차와 커피에 둘러싸여 자랐다. 튀니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커피를 다양한 유형의 친구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그는 베를린에 건너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핸드드립 방식의 스페셜티 커피를 내놓기 시작했다. 중동의 전통 커피 기기인 체즈베로 모카커피도 내린다. 올바른 원두와 장비로 커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의도다. 터키의 전통 디저트인 바클라바 등을 매일 바꿔가며 내놓는다.

‘정글에서 마시는 커피’ 콘셉트의 카페 더그린스는 예술가 레지던시와 전시장을 겸하는 알테뮌제 1층에 자리하고 있다. 회색의 안뜰은 카페 이름 외에 아무것도 없지만 내부는 온갖 식물로 가득하다. 조경 건축가인 마리 헨제가 베를린 중심에 2018년 문을 열었다.

카페 칸나는 베를린에서 ‘대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다. 의료적 대마 활용이 합법화되며 대마의 유효 성분 중 하나인 칸나비디올(CBD)을 커피와 융합했다. 원두를 로스팅할 때 CBD 성분을 첨가한 ‘CBD 인퓨즈드 커피’는 심신 안정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디카페인 커피 대신 많이 찾는다.오피스들이 모여있는 크로이츠베르크의 중정에선 미니 카페 키오스키를 찾을 수 있다. 강렬한 노란 색으로 유명한 슬로베니아의 빈티지 키오스크 K67을 디자인한 건축가 사샤 매시티지에게 의뢰해 베를린으로 가져온 키오스크 형태의 카페다. 핀란드식 쌀 파이 등 바쁜 직장인을 위한 간식거리도 맛있다.

베를린=글·사진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