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 중 가정폭력 신고 아내 살해 막을 수 없었나

피해자 6차례 경찰에 신고…지난달 6일에는 폭행도 당해
주변인 "고인 늘 불안해해"…경찰 소극적 조치에 아쉬움
가족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아냈으나 끝내 대낮 길거리에서 남편에게 살해된 사건과 관련,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이 살인까지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숨진 A(44)씨는 지난달 1일부터 모두 6차례에 걸쳐 "가정폭력을 당했다"거나 "남편과 함께 있는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특히 지난달 6일 밤에는 일하는 곳까지 찾아온 남편 B(50)씨에게 맞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 일로 B씨는 특수상해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변호사를 선임한 뒤 경찰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지난달 19일 B씨가 100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임시조치 명령을 받아냈으나, 주변 사람들은 A씨가 늘 불안에 떨었다고 전했다.

한 지인은 "A씨가 일하다 가게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불안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고, 원래 늦은 시간까지 일했었는데 퇴근도 일찍 했다"며 "너무 불안해해서 밥 먹을 때나 출퇴근할 때 내가 항상 같이 다녔다"고 말했다.

언제 남편이 찾아올까 늘 불안에 떨던 A씨였지만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만큼 거주지를 떠날 수도,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사건 당일 오전 법원에 B씨에 대한 퇴거 신청서까지 내고 돌아온 A씨는 몇 시간 뒤 자신의 일터에서 변을 당하고 말았다.

갑자기 남편이 찾아와 가방에서 흉기를 꺼내자 급히 밖으로 도망쳤지만 뒤따라온 B씨는 표정 변화도 없이 흉기를 휘둘렀고, A씨는 결국 병원 이송 도중 과다출혈로 숨졌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고인이 6차례나 신고했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기도 한 만큼 경찰이 적극적으로 조치했더라면 참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가정폭력 가해자가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를 반복해 위반할 경우 유치장 구금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위협을 느껴 수 차례 신고했고, 가해자가 분리 조치를 위반한 상황에서 경찰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도 "결과론이지만, 여러 차례 신고를 통해 위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경찰이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가해자를 그대로 돌려보내 결국 살인 사건으로 커졌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폭행 피해 당시 피해자 상처가 그리 심하지 않아 구속영장을 신청할 사안은 아니었고,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폭력 사태나 직접적인 위협은 없어 귀가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단체들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 없이는 이번과 같은 참극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현주 1366 대전센터 소장은 "가해자는 밖을 활보하며 돌아다니고 오히려 피해자가 그를 피해 숨어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이고, 법적인 최종 처분이 나오기 전이라도 가해자를 피해자와 더 강하게 분리하고 강제적으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