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임윤찬·정명훈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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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정명훈 협연…원코리아 오케스트라 여섯 번째 정기연주회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황제’였다. 지난 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마에스트로 정명훈(69)과 함께 들려준 베토벤의 ‘황제’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았다. 조금은 거칠고 성미 급한 ‘젊은 황태자’의 면모도 느껴졌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협연
시종일관 패기 넘치는 연주 선보여
과속한 듯 음정 뭉개지기도 했지만
박진감 넘치는 연주는 쾌감 선물
빠른 템포로 악단 이끈 정명훈
'운명' 단 두번의 리허설만으로
일사불란하고 역동적 소리 구현
이날 공연은 정명훈이 2017년 ‘음악을 통해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모토로 창단한 원코리아 오케스트라의 여섯 번째 정기 연주회였다. 프로젝트 악단인 원코리아 오케스트라는 매년 한 번씩 여는 연주회 때마다 국내외 오케스트라 전·현직 단원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된다. 이번 공연에선 거장 정명훈과 지난 6월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임윤찬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5번 ‘황제’를 협연한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공식 무대에서 ‘황제’를 처음 연주한 임윤찬은 시종일관 패기가 넘치고 확신에 찬 해석을 들려줬다. 1악장을 시작하는 오케스트라의 힘찬 팡파르에 바로 이어지는 피아노 독주 카덴차부터 날렵하고 경쾌했다. 오케스트라에 귀 기울이면서 음량과 템포를 정교하게 조절하면서도 독주가 이끄는 지점에선 단호하게 치고 나갔다. 호쾌한 타건과 맑고 또랑또랑한 음색으로 합주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만 과속한 탓인지, 잔향이 큰 공연장의 음향 환경 탓인지, 재현부에서 왼손 아르페지오(분산화음) 반주의 음들이 흐르는 듯 뭉쳐 들렸다. 후반부에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이 살짝 흐트러진 것도 아쉬운 점이다.
2악장에선 ‘조금 빠른 느낌의 아다지오(Adagio un poco mosso)’란 악상 지시어에 구애받지 않고 템포를 자유롭게 조정하며 주제 선율을 우아하게 변주했다. 3악장 론도 악장에선 발을 구르거나 몸을 뒤로 젖히는 등 과감한 동작과 함께 주제 선율을 신나고 박진감 있게 연주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를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면서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날것의 쾌감을 느끼게 했다.
임윤찬은 독주자로서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으면서 주어진 틀 안에서 자유롭게 개성을 발현해 왔다. 이번 연주에서도 그랬다. 3악장은 피아노 독주의 강렬한 아르페지오 연주에 이어 오케스트라가 론도 주제의 첫 부분을 다 함께 연주하며 끝난다. 독주는 쉬는 대목이지만 임윤찬은 흥에 겨웠던지 건반을 세게 두드리며 피날레에 가세했다. 이전 ‘황제’ 연주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참신한 마무리였다.정명훈은 임윤찬의 연주에 맞춰 전반적으로 빠른 템포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여유로운 동작으로 독주와 오케스트라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냈다. 연주가 끝나자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임윤찬을 안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앙코르 무대도 신선했다. 임윤찬은 페데리코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과 스크랴빈의 ‘앨범 리프 1번’과 ‘포엠 1번’ 등 연주회장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낯선 소품 세 곡을 연속해 들려줬다. 앙코르 세 곡 중 한 곡쯤은 일반 청중에게 좀 더 친숙하고, 공연 프로그램과 결이 맞는 곡을 들려줄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관객의 취향에 맞추기보다 자신이 연주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곡들을 머뭇거림 없이 당차게 들려주고 퇴장하는 모습에서도 젊은 패기가 느껴졌다.
2부에서 들려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은 정명훈이 왜 거장으로 불리는지 보여주는 연주였다. 그는 단 두 번의 리허설로 여러 연주단체에서 모인 단원들의 소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원코리아 오케스트라는 ‘황제’에선 앙상블이 종종 흔들리는 등 프로젝트 악단의 한계를 드러냈지만 ‘운명’에선 달랐다. 정명훈의 손짓과 몸짓에 맞춰 일사불란하고 역동적인 사운드를 뿜어냈다. 더블베이스 주자를 8명으로 편성하는 등 현악의 중저음 파트 규모를 늘린 게 주효했다. 중후한 음색과 풍성한 음량으로 베토벤 특유의 강한 활력과 응집력, 웅장한 소리를 구현했다. 다만 4악장에서 현악의 압도적인 파워에 밀려 일부 관악 파트의 소리가 묻힌 것은 아쉬웠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