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주차구역 위반 車, 기다린 장애인에 "신고 안 할 거죠?"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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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장애인주차구역 위반 건수 203만건빈번한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하 장애인주차구역) 불법주차로 인한 장애인의 불편함이 점차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인권을 증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평균 1100건 달해…상습 적발 약 4만건
장애인 인권 증진과 장애 인식 개선에 기여하고 있는 유튜버 '위라클 WERACLE'(본명 박위·35, 이하 위라클)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장애인주차구역에서 불법 주차한 차주와 마주쳤다'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이 영상을 보면 위라클은 최근 한 동주민센터에서 장애인주차구역에 버젓이 주차한 한 트럭을 목격했다. 그에 따르면 해당 장애인주차구역은 이 주차장 내 유일한 장애인주차구역이다. 위라클은 "진짜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때 트럭 차주가 나타났다. 차주는 "금방 빼 드리겠다. 차 대려고 그러는 것이냐"고 물었고, 위라클은 차주에게 "어떤 용무로 (차를) 대셨냐"고 되물었다. 이에 차주는 "전기차 충전하러 왔다가 사무실에 들러서 환경부 전화번호 좀 알아보고 왔다"고 대답했다. 이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이후 차에 탄 위라클에게 다시 찾아온 차주는 "미안하다"고 재차 사과했다. 하지만 이내 "뭐 신고되고 그러는 건 아니죠? 제가 벌금 내야 하나요?"라고 다시 찾아온 목적을 드러냈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다시 와서 사과하길래 근본은 바르다고 생각했지만, 벌금을 걱정했던 것", "저러면 기분이 더 나빠지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서울역 야외 주차장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위라클이 '서울역 주차장의 충격적인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올린 영상을 보면 서울역 야외 주차장의 4개의 장애인주차구역 가운데 2대가 차량용 장애인 스티커가 부착돼 있지 않았다.
주차장 관리인은 "신고했고 (평소에도) 신고 많이 한다"며 "(불법주차를) 막는 게 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위라클은 "이게 진짜 우리나라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현재 우리나라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17조와 27조에 따라 전국 지자체는 장애인주차구역을 설치하고, 불법주차 및 주차방해행위 등 위반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 취지와는 무색하게 장애인주차구역 불법주차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는 장애인주차구역 불법주차를 신고했더니 주차장에 '협박성 현수막'이 걸린 일도 있었다. 지난 8월 20대 회사원 A 씨는 자신이 사는 빌라의 장애인주차구역에 불법 주차한 차량을 신고했고, 과태료 부과까지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그 뒤에 발생했다. 신고한 지 일주일 정도가 흘렀을 무렵 빌라 주차장 벽면에 국민신문고에 사진 찍어 올린 XXX 벼락 맞아 죽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린 것.더욱이 빌라 주인은 빌라 엘리베이터 옆에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올리는 모습은 CCTV로 지켜보고 있다. 불편하면 전화해서 차량을 이동해달라 요청하면 된다. 당신의 마음은 곧 당신의 인간성"이라며 신고 행위를 비난하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7~2021년) 전국 장애인주차구역 주차 위반 건수는 총 203만여 건이다. 이는 일평균 약 11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5회 이상 상습적으로 적발된 경우가 총 3만3902건으로 장애인주차구역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역시·도별 위반 누적 건수는 경기가 64만 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32만 건, 부산 12만 건 순으로 나타났다.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광역시·도 자동차 등록 수 대비 2021년 장애인주차구역 위반율을 분석한 결과 ▲광주 2.07%, ▲서울 1.83%, ▲경기 1.76%, ▲인천 1.65%, ▲충남 1.59%, ▲부산 1.57% ▲강원 0.95%, ▲전남 0.9% ▲경북 0.83% 등으로 나타났다.전 의원은 "평균 40만 건의 장애인주차구역 법 위반과 5회 이상의 상습 불법주차는 장애인 기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장애인 인권을 증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와 법안 통과를 위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