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번엔 '반도체굴기' 겨냥…中의 첨단기술 확보 총력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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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슈퍼컴퓨터용 반도체 수출통제…명분은 군사용·인권침해 차단
동맹과 수출통제 협력 모색…한국 기업, 의도치 않은 불이익 우려도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를 견제해온 미국이 이번에는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 등 미래 산업과 기술의 판도를 좌우할 반도체 분야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중국을 21세기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꼽고 있는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의 경쟁우위가 국가안보의 필수 조건이라는 판단에 따라 최대 경쟁국인 중국의 기술 숨통을 서서히 조여가는 모습이다.
미국 상무부는 7일(현지시간) 중국을 겨냥한 두 종류의 신규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우선, 상무부는 고성능 AI 학습용 반도체와 중국의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특정 반도체 칩을 중국에 수출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이미 수출통제명단(entity list)에 포함된 28개 기업에 대해 통제 범위를 확대하고, 아직 수출통제명단에 넣지는 않았지만 관심 대상을 의미하는 미검증명단(unverified list)에 31개 기업을 추가했다.
상무부는 특히 이 조치에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했다.
미국이 아닌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만든 반도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을 사용했으면 수출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상무부는 조사 대상 기업이 소재한 외국 정부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을 수출통제명단에 올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두 번째 조치로는 미국 기업이 ▲ 1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 14nm 이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했다.
이는 미국 기업에만 해당하는 조치다. 특히 생산시설의 소유가 중국 기업일 경우엔 거부추정원칙이 적용돼 사실상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이들 조치에 대해 "중국이 첨단 학습용 반도체를 확보하고, 슈퍼컴퓨터를 개발·유지하며, 첨단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출통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조치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내 산업뿐 아니라 중국 등을 상대로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필수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또 중국이 스파이 행위와 기술 이전 강요 등 불법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첨단기술을 '도둑질'하며 미국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어 수출통제 같은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16일 '글로벌 신흥기술 서밋'에서 "우리 경쟁국은 민감한 기술, 정보, 노하우를 불법으로 확보하기 위해 갈수록 정교한 수단을 쓰고 있어 우리도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그동안에는 미국이 수출통제를 적용할 때 경쟁국보다 두어 세대 앞선 기술을 보유하는 '상대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데 만족했지만 "이제는 가능한 한 큰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며 '초격차'를 강조한 바 있다.
한마디로 중국의 부상을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조치 외에도 이미 올해 고성능 AI 애플리케이션에 사용되는 첨단반도체, 첨단반도체와 가스터빈엔진 관련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발표했으며, 중국의 항공우주 관련 기업 7곳을 수출통제명단에 추가했다.
전부 중국을 겨냥한 조치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동맹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는 게 부담이다.
수출통제는 관련 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우회할 수 있어 미국은 동맹과 함께 포위망을 최대한 촘촘히 짜려고 하고 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한국 기업으로서는 의도치 않게 불이익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미국도 한국과 같은 동맹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나름 배려한 측면이 엿보인다.
일례로 중국으로의 반도체장비 수출을 금지하면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중국에 투자한 외국기업에 대해선 사안별로 심사해서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전보다 절차가 까다롭게 적용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다른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가 단독으로 도입한 통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며 "또 외국 경쟁기업이 같은 통제를 받지 않으면 미국의 기술 리더십이 타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BIS는 상무부가 가까운 동맹 및 파트너에게 수출통제 내용을 설명하고 협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AI와 슈퍼컴퓨터용 반도체를 표적으로 한 이유는 군사적 용도로 널리 전용될 수 있고, 중국 정부가 안면 인식 프로그램 등으로 신장위구르 지역 등에서 자국민을 감시하는 등 인권 탄압에 기술을 활용한다는 게 1차적인 이유다.
BIS는 "중국은 대량살상무기(WMD)를 포함한 첨단 무기체계를 생산하고, 군사 결정·계획·군수(軍需) 및 자율 무기체계의 속도와 정확성을 개선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데 이런 제품과 능력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내가 지난 7월 의회에서 밝혔듯이 산업안보국의 목표는 모든 힘을 다해 국가안보를 지키고 중국 군·정보·보안 당국이 군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민감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이유 이외에 최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연합뉴스
동맹과 수출통제 협력 모색…한국 기업, 의도치 않은 불이익 우려도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를 견제해온 미국이 이번에는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 등 미래 산업과 기술의 판도를 좌우할 반도체 분야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중국을 21세기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꼽고 있는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의 경쟁우위가 국가안보의 필수 조건이라는 판단에 따라 최대 경쟁국인 중국의 기술 숨통을 서서히 조여가는 모습이다.
미국 상무부는 7일(현지시간) 중국을 겨냥한 두 종류의 신규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우선, 상무부는 고성능 AI 학습용 반도체와 중국의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특정 반도체 칩을 중국에 수출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이미 수출통제명단(entity list)에 포함된 28개 기업에 대해 통제 범위를 확대하고, 아직 수출통제명단에 넣지는 않았지만 관심 대상을 의미하는 미검증명단(unverified list)에 31개 기업을 추가했다.
상무부는 특히 이 조치에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했다.
미국이 아닌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만든 반도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을 사용했으면 수출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상무부는 조사 대상 기업이 소재한 외국 정부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을 수출통제명단에 올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두 번째 조치로는 미국 기업이 ▲ 1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 14nm 이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했다.
이는 미국 기업에만 해당하는 조치다. 특히 생산시설의 소유가 중국 기업일 경우엔 거부추정원칙이 적용돼 사실상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이들 조치에 대해 "중국이 첨단 학습용 반도체를 확보하고, 슈퍼컴퓨터를 개발·유지하며, 첨단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출통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조치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내 산업뿐 아니라 중국 등을 상대로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필수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또 중국이 스파이 행위와 기술 이전 강요 등 불법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첨단기술을 '도둑질'하며 미국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어 수출통제 같은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16일 '글로벌 신흥기술 서밋'에서 "우리 경쟁국은 민감한 기술, 정보, 노하우를 불법으로 확보하기 위해 갈수록 정교한 수단을 쓰고 있어 우리도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그동안에는 미국이 수출통제를 적용할 때 경쟁국보다 두어 세대 앞선 기술을 보유하는 '상대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데 만족했지만 "이제는 가능한 한 큰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며 '초격차'를 강조한 바 있다.
한마디로 중국의 부상을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조치 외에도 이미 올해 고성능 AI 애플리케이션에 사용되는 첨단반도체, 첨단반도체와 가스터빈엔진 관련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발표했으며, 중국의 항공우주 관련 기업 7곳을 수출통제명단에 추가했다.
전부 중국을 겨냥한 조치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동맹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는 게 부담이다.
수출통제는 관련 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우회할 수 있어 미국은 동맹과 함께 포위망을 최대한 촘촘히 짜려고 하고 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한국 기업으로서는 의도치 않게 불이익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미국도 한국과 같은 동맹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나름 배려한 측면이 엿보인다.
일례로 중국으로의 반도체장비 수출을 금지하면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중국에 투자한 외국기업에 대해선 사안별로 심사해서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전보다 절차가 까다롭게 적용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다른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가 단독으로 도입한 통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며 "또 외국 경쟁기업이 같은 통제를 받지 않으면 미국의 기술 리더십이 타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BIS는 상무부가 가까운 동맹 및 파트너에게 수출통제 내용을 설명하고 협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AI와 슈퍼컴퓨터용 반도체를 표적으로 한 이유는 군사적 용도로 널리 전용될 수 있고, 중국 정부가 안면 인식 프로그램 등으로 신장위구르 지역 등에서 자국민을 감시하는 등 인권 탄압에 기술을 활용한다는 게 1차적인 이유다.
BIS는 "중국은 대량살상무기(WMD)를 포함한 첨단 무기체계를 생산하고, 군사 결정·계획·군수(軍需) 및 자율 무기체계의 속도와 정확성을 개선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데 이런 제품과 능력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내가 지난 7월 의회에서 밝혔듯이 산업안보국의 목표는 모든 힘을 다해 국가안보를 지키고 중국 군·정보·보안 당국이 군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민감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이유 이외에 최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