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8m' 러버덕 앞에서 인간은 모두 똑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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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아의 걷다가 예술지난달 28일 서울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앞 석촌호수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전과 별다른 것 없는 풍경을 ‘핫스폿’으로 만든 주인공은 이날 밤 호수에 띄워진 18m 높이의 거대한 노란색 고무 오리였다. 2014년 석촌호수에 설치돼 한 달간 약 500만 명이 관람한 ‘러버덕’이 8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플로렌타인 호프만 '러버덕'
석촌호수에 8년 만에 재등장
전 세계 60여개국서 순회 전시
2014년 서울에선 500만명 관람
'평등·포용'의 메시지 담아
"코로나로 지친 마음 달래고파"
반응은 뜨겁다. 공식 제막식(9월 29일) 전날부터 ‘러버덕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수백 명이 모였고, 약 2주 만에 인스타그램엔 관련 게시글이 10만 건 넘게 올라왔다.어릴 적 욕조에 띄워 놀던 러버덕은 단순히 귀엽기만 한 장난감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약 4000만 명)을 모은 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45)은 2007년부터 고향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시작으로 60여 개국에 러버덕을 띄우고 있다.
거대한 고무 오리에 담긴 메시지는 ‘평등’이다. 높이 18m의 오리 앞에선 모두가 작아지고, 평등한 존재가 된다. ‘석촌호수 러버덕 프로젝트’에 맞춰 방한한 호프만은 제막식 전날 기자와 만나 “러버덕은 인종이나 성별을 떠나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고 말했다. 이번에 ‘원조’ 러버덕과 함께 띄운 ‘레인보 러버덕’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레인보 러버덕은 다양한 색깔을 품고 있는 것처럼 각기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고 설명했다.
호프만은 특정 장소에 딱 맞는 작품을 설치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4년 영국 런던 템스강에는 거대한 하마 모양의 나무 조각을 설치했다. 과거에 이 강에 하마가 살았던 데서 착안한 것이다. 2020년에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한 쇼핑몰 인근에 비닐봉지를 물고 가는 18m 높이의 여우 조형물을 설치했다. 예전에 여우가 많이 출몰했다는 것에 영감을 얻었다.그의 거대한 동물 작품은 힘들고 지친 삶 속에서 위로를 주기도 한다. 호프만이 암스테르담에 설치한 ‘베개를 든 곰’은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에서 ‘총 대신 베개 싸움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었다. 근방에 있는 암 병원 환자들은 ‘재미있는 작품을 감상하며 위안을 얻었다’는 편지를 호프만에게 보냈다고 했다. 러버덕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4년 러버덕이 세월호 사건으로 슬퍼했던 한국 사람들을 위로했다면, 올해는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8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러버덕은 2014년(16.5m)보다 키가 1.5m 자랐다. 호프만은 그만큼 자신도 “‘진화했다(evolved)”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동물을 사람의 은유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좀 더 솔직하게 사람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네덜란드 알메러에서 선보인 ‘비 홀드’가 대표적이다. 거대한 두 명의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양의 이 작품은 자세히 보면 1만여 개의 꿀벌 모형으로 이뤄져 있다. ‘벌이 사라지면 사람도 죽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자연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냈다.
호프만의 러버덕은 이달 31일까지 서울에 머무른다. 러버덕의 다음 행선지를 묻자 호프만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세계는 하나의 큰 ‘욕조’와 같아요. 물이 있는 곳이면 러버덕은 어디든 갈 수 있죠.”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