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밥보다 능력"…추경호·이창양의 행시 '기수파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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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 승진인사 최우선 기준이던 '행시 기수' 뒤집은 인사 이어져정부 부처에서 '기수 파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관가에서 행정고시 기수는 인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는 점에서 '파격'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인사 적체가 심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기수 문화를 뒤집은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선배보다 먼저 과장-국장 승진하고
최고참 아닌데도 총괄 과장 맡아
11일 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7일 행정고시 49회 출신 3명을 본부 보직과장에 임명했다. 기재부 과장 대다수가 행시 43~47회 출신이고, 48회 중에서도 아직 과장직을 맡지 못한 이들이 다수인 것을 감안하면 예상 밖 인사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정규삼 신임 경제정책국 정책기획과장은 전임 과장(45회)과 비교하면 네 기수 차이다. 정책기획과장은 경제정책국 내 핵심 보직 중 하나라 초임 과장에게 맡긴 적이 거의 없다는 게 기재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49회 출신의 허수진 탄소중립전략팀장과 이희곤 외환분석팀장은 각각 청년정책과장, 인구경제과장으로 발령났다.
기재부의 기수 파괴 인사는 추경호 부총리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추 부총리는 취임 직후 "기수대로 승진시키다가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지 못한다"며 "기수보다 능력을 우선적으로 감안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서 기재부 국장급 인사에서는 39회 출신이 선임 국장격인 경제정책국장(윤인대)에 내정되기도 했다. 전임 경제정책국장인 김병환 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37회)에서 38회를 건너뛴 인사였다. 경제정책국장은 기재부 내 각 국에서 만든 정책을 종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참 국장이 맡는 게 관례였다. 조용범 대변인과 황순관 예산실 복지안전예산심의관도 39회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선배인 38회보다 39회가 더 잘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선배들을 제친 행정고시 40회 국장(조만희 세제실 재산소비세정책관)도 최근 탄생했다. 산업부에서는 최근 행정고시 50회 과장(송용식 혁신행정담당관)이 발탁됐다. 48회와 49회 중에서 보직과장을 맡고 있는 산업부 직원은 여섯 명 중 한 명 꼴에 불과하다. 관련 기수에서 "왜 하필 지금 기수 역전이 이뤄지냐"는 불만이 나올 정도로 파격 인사라는 후문이다.
원전산업정책국 총괄과장(문상민 원전산업정책과장)은 행정고시 46회인데, 이 국에는 44회 출신 등 선배 과장도 있다. 보통 각 국의 최고 고참 과장이 총괄과장을 맡고 있는 관례를 뒤집은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기수를 뛰어넘는 인사를 하는 게 불가능했다"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누군가 불만을 품을 수 있으니 어느 누구도 관례를 뒤집자고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창양 장관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이 장관은 앞으로도 기수를 뛰어넘는 인사를 하겠다고 주변 인사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관가 일각에서는 기재부와 산업부가 워낙 인사적체가 심하다보니 기수 파괴 인사가 더욱 절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른 부처에서는 자연스럽게 젊은 공직자들이 국장 및 과장으로 등장하는데, 기재부와 산업부는 5~6년 정도 승진이 늦다보니 기수를 따지다보면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능력에 따른 인사는 민간영역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며 "정부에서도 기수 파괴 인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이지훈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