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시그넷, 美 충전기 제조공장 짓는다…"충전기 시장 선도할 것"

전기차 충전기 제조업체 SK시그넷이 미국 텍사스주에 충전기 제조시설을 신설한다고 12일 발표했다. 국내 충전기 업체 중에서 처음이다. 미국 정부가 ‘국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법(NEVI)’,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현지 제조한 충전기에 보조금을 준다는 점이 진출 배경이다.

SK시그넷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미국 텍사스주 전기차 공장 신설에 1500만달러(약 213억원)을 투자하기로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초기에 1500만달러를 투자하고, 이후 증설을 통해 500억원까지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SK시그넷은 연내 장비 세팅 및 생산에 착수해 내년 2분기부터 연 1만기 충전기를 전량 양산할 계획이다. 텍사스주의 유휴시설을 인수해 공장으로 개조함으로써 생산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계획이다. 미국 공장이 완공되면 SK시그넷은 연 2만기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미국 공장의 건물 면적은 1만3200㎡(약 4000평)로 향후 9917㎡(약 3000평) 부지를 증설하면 연 1만기를 더 생산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NEVI로 2030년까지 약 5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예산으로 배정했다. 고속도로 80㎞마다 급속 또는 초급속 충전소를 설치해 미국 전역에 50만개의 충전소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IRA 역시 전기차 충전소를 구축하면 최대 10만달러의 보조금을 세제혜택으로 제공한다. 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 내에서 충전기를 생산해야 해 미국 진출이 필수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충전기 시장의 80%는 정부 보조금이 반영된 구매일 것”이라며 “미국에 공장이 없으면 충전기 사업을 못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연말께 충전소 업체를 대상으로 설치 프로젝트를 발주할 예정이다. SK시그넷 관계자는 “현지법인을 통해 수주 마케팅에 돌입했다”며 “미국 충전소 업체들이 먼저 찾아와 납품을 의뢰할 정도로 시장이 뜨겁다”고 말했다. 글로벌 충전기 업체들도 미국에 잇따라 진출 중이다. 호주 트리튬은 공장을 완공했고, 스페인 월박스와 스위스 ABB도 공장을 짓거나 확장할 예정이다.

SK시그넷은 경쟁사보다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고 납품 기한이 짧으며 품질이 우수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여기고 있다. SK시그넷은 충전소 업체인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EA) 초급속 충전기의 50%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시장의 가장 큰 경쟁자는 테슬라 슈퍼차저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충전기 업체 점유율은 슈퍼차저가 절반 가량이고 EA가 30~40%다. 신정호 SK시그넷 대표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함으로써 북미 초급속 충전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굳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