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봐야 얼마나 가겠냐 했는데"…한국인들 日여행에 목말랐다 [최지희의 셀프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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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희의 셀프 체크인]은 한국경제신문 여행·레저기자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소개합니다. 미처 몰랐던 가까운 골목의 매력부터, 먼 곳의 새로운 사실까지 파헤쳐봅니다. 매주 새로운 테마로 '랜선 여행'을 즐겨보세요.지난 10월 11일, 일본 정부가 관광목적 비자발급 의무를 해제했습니다. 무려 3년 만입니다. 이로써 일본으로의 자유여행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기존에도 일본 관광은 가능했지만, 여행 전 관광비자를 받아야만 입국이 가능했습니다. 실제로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일본 입국에 비자가 필요한 줄 모르고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그냥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자주 벌어졌죠. 사실 일본 여행은 비단 코로나19 때문에만 주춤했던 것이 아닙니다. 2019년 전국적으로 '일본 불매' 즉 '노 재팬' 운동이 확산되며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객 수는 급감했습니다.
한 대형 여행사의 여행 출발자 수를 보면 '노 재팬' 운동 전인 2018년에는 한 달 평균 4000명이 떠났지만, 2019년에는 그 수가 400명으로 줄었습니다. 여행사 하나만 놓고 봐도 줄어든 걸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유여행객 수까지 합치면 2019년 한 해동안 일본 관광객 수는 10분의 1 가까이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자유여행 재개 소식이 들리자마자, 여행사에는 일본 예약 문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주말 황금 시간대 일본행 항공기 좌석도 동났습니다. 결국 '다시 일본'입니다. 왜 우리는 유독 '일본 여행'에 목말랐던 걸까요.
여행사 "일본 상품 '노 재팬' 전보다 더 팔렸어요"
"일본 자유여행이 재개된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 여행사들은 미리 분주했습니다. 지난 9월 단체여행객 입국 허용 발표가 났을 때부터 일본 패키지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기 때문입니다.실제로, 롯데관광이 이달 초 선보인 미야자키행 단체 전세기 여행은 가격이 일본 여행상품의 평균가보다 고가에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픈과 동시에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일본여행 재개의 기대감을 읽은 여행사들은 자유여행이 열리게 되면 그 특수가 '제대로' 터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상품들을 대거 준비했습니다. "11일부터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라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여행사들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물밀듯 여행 예약이 들어왔습니다. 10월 들어 국내 여행사 중 하나인 참좋은여행의 일본여행 출발자는 9월 대비 3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참좋은여행 관계자는 "9월에도 1139명이 출발한 것을 보고 충분히 '특수'라고 여겼다"며 "10월에 이보다 무려 321%가 늘어난 3664명이 일본행을 택한 것을 보고 우리도 놀랐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이 수치는 해당 여행사의 2019년 일본 불매운동 '노 재팬' 이전 출발자인 4,838명의 80%까지 회복한 수준입니다.
다른 여행사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인터파크가 일본 무비자 입국 허용 발표 후 예약 데이터를 직전 일주일과 비교한 결과, 일본 항공권 예약 건수는 268%, 여행상품 예약은 204% 증가했습니다.
자유여행객들이 애용하고 있는 여행 플랫폼 '트리플'에서도 같은 기간 항공권 거래액이 각각 1257%나 늘었습니다. 그야말로 여행사들은 '일본 여행 특수'를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출발 2주 전도 아슬아슬" 비자 받기 위해 줄 섰다
단순히 이번 '비자발급 의무 해제'로 인해 일본에 여행객이 몰린 것은 아닙니다. 지난 9월 일본 정부가 단순히 '입국의 문'만 열어줬을 때에도 여행객들은 줄을 섰습니다. 비자 발급에, 심사까지 거쳐야 하는데도 말이죠.일본 정부가 허용한 관광객 입국 가능 조건은 단체여행객, 혹은 여행비자를 받은 개인여행객이었습니다. 패키지 여행을 가는 비율이 크지 않은 일본 특성상, 개인여행객들은 모두 여행 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입국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여행사와 주한일본대사관은 "가봐야 얼마나 가겠어"라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비자를 받는 데 추가 비용이 들고, 최소 열흘 전에는 여행과 비행기, 머물 호텔까지 결정해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주한일본대사관은 전국 여행사 24곳을 여행비자 대행 서비스 기관으로 삼았습니다. 대사관에 직접 방문하는 대신, 지정된 여행사를 통해 발급 대행을 허용해준 겁니다. 대행비용은 5만원입니다. 첫 시행 당시, 대사관에서는 열흘에서 일주일 정도면 비자 발급엔 충분하다고 공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9월 이 20여곳의 여행사에 비자 발급을 요청하자 '100% 거절'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밀려있는 인원이 너무 많아 신규 비자발급 대행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
실제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엔 출발일 2주 전에 비자 대행을 접수해도 안전하지 않으니 더 빨리 접수해달라는 공지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비자에 돈을 내고, 기다리더라도 일본 여행을 가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 것입니다.
왜 일본여행에 이토록 목말랐나
"다른 나라 여행길이 열렸을 땐 이정도 '패닉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 왜 일본만?" 이라는 의문이 들 때가 됐습니다. 왜 이토록 우리는 일본 여행을 목 빠져라 기다렸던 걸까요. 여행사들은 이번 '일본 여행 러시'가 일어난 이유로 몇 가지를 꼽습니다.첫째는 접근성입니다. 일본은 비행기로 길게는 3시간, 아주 짧게는 4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특히 후쿠오카와 같은 도시는 제주도 비행시간과 10여 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죠. 즉, 일본은 직장인이 연차를 내지 않거나 반차만 내도 해외여행이 가능한 나라라는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최고의 장점임이 분명합니다. 해외에서 아무리 유명한 한식당을 찾아도 한국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없듯이, 일본의 '정통 일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거기에 3년 여간 변한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관광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는 게 여행사의 의견입니다. 둘째는 물가와 '엔저 현상'입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길이 막히며 국내 여행객들은 제주도 및 국내 유명 여행지로 몰렸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3년, 국내 관광지를 찾은 여행객들에게서는 점점 '고물가'에 대한 비판이 나왔습니다. 24시간에 최대 20만원을 호가하는 렌트카에,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린 유명 식당과 카페 등 여러 이유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으로의 여행 경비에 비자 발급값까지 포함해도 여행객들 입장에서는 '제주도 가는 값이나 같다'라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게 여행사들의 설명입니다. 여기에 기록적인 '엔저 현상'으로 일본 물가는 상대적으로 더 싸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노 재팬'을 외친 지 4년여 만에 '결국 다시 일본'을 찾는 모습이 씁쓸하기도, 어딘가 '아이러니'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이 각광받는 이유엔 팬데믹 3년간 변해버린 국내 여행지가 가진 문제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