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스마트] '원전포화' 발등에 떨어진 고준위방폐장…입지 조건은

김영석 부경대 교수 "방폐장 부지, 활성단층·대도시 피하고 바다와 가까워야"

정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포함하는 등 친원전 정책으로 복귀한 가운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하 '고준위방폐장') 건설 논의도 힘을 받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HLW)이란 방사능 농도와 열 발생률이 높은 방사성폐기물로, 대부분 원전 연료로 사용된 뒤에 남은 사용후핵연료다.

고준위방폐장 건설 필요성은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지은 뒤 학계와 정치권에서 계속 언급됐으나, 경주 중ㆍ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만 확보하는 데 그쳤다.

그동안 국내에서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 내부에 있는 습식 저장시설에 임시로 보관됐는데, 각 원전 부지 저장시설은 점점 가득 차고 있다. 특히 고리와 한빛 원전의 경우 경수로 중에서도 가장 빠른 2031년과 2032년에 각각 포화 상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와중에 정부가 신한울 3·4호기 조기 건설 등을 추진하는 만큼 고준위 방폐장 마련은 당장 발 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에 대한지질학회,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 대한지질공학회, 한국암반공학회 등 지질 분야 4개 학회는 지난 13일 합동 토론회를 열어 고준위 방폐장 입지와 선정방식 등에 대해 논의했다. 김영석 부경대 교수(환경지질과학전공)는 '국내 고준위방폐물 처분 가능성 및 절차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방폐장 후보 부지 선정 시 고려할 조건을 설명했다.

우선 활성단층이 있거나 대도시 인근인 지역은 제외해야 하며 고준위 방폐물의 운반 용이성이 높은 곳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들었다.

활성단층이란 최근 지질시대에 활동했고 가까운 미래에 다시 활동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다. 김 교수는 활성단층이 국내에서는 주로 동남부에 집중돼 있지만,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고준위 방폐물이 육상으로 운송되기보다는 선박으로 옮겨질 경우가 높은 점을 고려해 해안에서 50㎞ 이내이면서, 인구 100만 이상 도심지 반경 20㎞ 바깥 지역에 방폐장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김 교수는 참고할 처분 부지 선정 절차 모범 사례로 핀란드를 소개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 처분시설 운영을 앞둔 국가로, 1983년에 용지 확보에 착수해 2001년 부지를 선정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핀란드 부지 선정 절차는 크게 3단계로 이뤄졌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위성사진이나 항공사진을 이용해 대규모 선형구조나 단층대로 나뉘는 큰 규모의 암반 블록을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후보 부지 61곳을 선정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첫 번째 단계에서 도출된 후보 부지 중 지역개발이 확정되지 않은 지역을 선별했다.

이후 암상과 지형적 기복 등 지질학적 인자와 인구밀도, 보호구역, 토지 소유자 허가 등 환경인자를 분석해 후보지를 5개로 좁혔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5개 후보지에 대해 지질 모델을 개발하고 상세 조사를 진행한 뒤 최종 후보지를 선정했다.
김 교수는 선정 절차에서 "처음 후보지를 선정할 때는 지질학적 요소 등에 기초한 공정하고 과학적인 방법론만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후 후보지를 좁혀갈 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부지선정의 공정성과 안정성, 혜택에 관해 설명을 계속하며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 8월 입장문을 내고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은) 정치적 쟁점이 돼서는 안 되고, 지속가능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 시설"이라며 "안전과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원전에 대한 찬반을 떠나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확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학회는 지하 연구시설을 조속히 구축한다면 2050년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