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와 우리는 다르다"…삼성전자, 자신감 폭발한 이유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TSMC 올해 설비투자 360억달러
기존 목표 대비 10% 줄여
"단기적으로 시장 상황 좋지 않다"

칩 공급량 조절 나선 기업들
삼성은 '꾸준한 투자' 이어갈 듯
"불황에 투자해야 이익 커져"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전경. 한경DB
지난 15일 카카오톡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설비를 모아 놓은 공간이다. 인터넷·클라우드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은 전 세계 곳곳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자사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기업 중에선 네이버가 자체 데이터센터를 운영한다. 카카오 등 대다수 기업은 삼성SDS, LG CNS, SK C&C, KT 같은 전문 업체에 맡긴다. 비용이나 데이터·시설 관리 등의 측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투자 단기간 줄어 삼성전자 실적 타격

데이터센터 산업이 커지면서 수혜를 본 기업들이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반도체기업이다. 데이터센터 서버에 들어가는 D램, 스토리지용 SSD(데이터저장장치)를 팔아 매 분기 조(兆)단위 매출을 기록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삼성전자의 기업용 SSD 시장 점유율은 44.5%, 매출은 32억5900만달러(약 4조7000억원)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점유율 24.4%, 매출은 17억8900만달러(약 2조5800억원)로 조사됐다.그래서 데이터센터 투자 위축은 삼성전자 같은 기업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삼성전자가 3분기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잠정 매출과 영업이익(매출 76조원, 영업이익 10조8000억원)을 기록한 원인 중 하나로 '부진했던 서버용 D램 판매'가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서버 D램 수요는 괜찮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줄이면서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용 D램 매출이 목표에 못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다퉈 투자축소, 감산...TSMC도 "설비투자 기존보다 10% 줄인다"

서버용 반도체 시장 만의 문제는 아니다. PC 수요 감소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판매 부진으로 PC, 모바일용 반도체 시장도 얼어붙었다. 수요가 급감하면서 반도체 공급사들은 앞다퉈 감산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낸드플래시 업체 키오시아는 "웨이퍼 투입량을 30%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를 그만큼 적게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메모리반도체업체 마이크론은 "2023회계연도에 반도체 장비 투자를 50%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TSMC 로고. 로이터
지난 13일엔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 TSMC도 "올 연말까지의 설비투자액을 360억달러(약 51조9000억원)로 기존(400억달러) 대비 10% 줄인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반도체 장비 반입 지연과 함께 악화하고 있는 세계 경기를 꼽았다. 이날 열린 실적설명회에서 TSMC 경영진은 "중장기 반도체 수요는 괜찮지만, 단기적인 측면에선 신중하게 투자하겠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감산 논의 안 한다"

시선은 세계 1위 D램·낸드플래시 업체 삼성전자에 쏠린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지난 5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테크데이에서 "현재 (감산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게 기조”라며 “그러나 심각한 공급 부족·과잉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급 축소 의도를 갖고 생산 라인 가동을 멈추거나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생산 라인의 제품 조합을 바꾸거나 공정 전환, 라인 효율 최적화 등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급량을 조절하는 전략은 삼성전자도 언제든지 쓸 수 있다는 게 삼성 안팎의 관측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인위적 감산'은 안 했지만, 공급량 조절은 업황에 따라 수시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하면 삼성전자가 다른 업체들처럼 감산에 적극적이지 않은 건 확실하다. 이유가 뭘까. 삼성전자가 과거처럼 손실을 감수하고 다른 업체들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 위해 공급량을 줄이지 않는 '치킨게임'을 벌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2000년대와 달리 현재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D램은 3곳, 낸드는 5곳 정도의 기업으로 압축돼있기 때문에 실익이 크지 않아서다.

"불황 때도 꾸준히 투자해야 호황 때 좋은 결과"

힌트는 삼성전자 주요 반도체 경영진의 발언에서 얻을 수 있다. 단기적으론 부침이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론 기업의 디지털 전환으로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꾸준할 것이란 것이다.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은 지난 5일 "삼성전자가 약 40년간 만들어낸 메모리의 총 저장용량이 1조기가바이트(GB)를 넘어서고, 이중 절반이 최근 3년간 만들어졌다"며 "우리는 급변하는 디지털 전환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고대역폭, 고용량, 고효율 메모리를 통해 다양한 새로운 플랫폼과 상호진화하며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사이클이 과거보다 짧아진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엔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과 하락이 약 3년 주기로 반복됐다. 수요가 늘면 업체들이 앞다퉈 설비 증설에 나서고, 이것이 공급 과잉으로 이어지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현상이 되풀이한 것이다.

최근엔 약 1년 6개월 정도로 사이클 주기가 짧아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이유로는 PC, 모바일, 서버, 자동차 등으로 메모리반도체의 주요 수요처가 확대됐고, 수요처마다 업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PC와 모바일 업황이 부진해도 서버와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면 하락 사이클이 짧아질 수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한경DB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장인 경계현 사장도 최근 "경기 사이클이 빨라지면서 불황기에 투자를 적게 하는 게 호황기에 안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며 "시장의 업앤다운(up&down)에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투자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판단은 △메모리반도체 수요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우상향 중이고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기가 내년 상반기쯤엔 상승기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고 △그때 공급량을 늘려 최대의 매출을 뽑아내려면 지금 투자를 줄이면 안 된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전략은 오는 27일 열리는 3분기 실적설명회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