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자 의도를 파악하라"…경제정책 결정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하박사의 쉬운 펀드]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아무도 경제 장기침체 원치 않아"
시장 참여자가 신뢰하는 정책 필요
보수적 정책 대비 중장기적 관점서 대응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의 경제상황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울합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과 이로 인한 이자 부담으로 가계와 기업 모두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경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 긴축 완화, 경기 연착륙의 순서가 필요한데, 현 상황으로는 쉽지 않아서, 당분간은 경제의 변화추이를 지켜보며 현상황을 인내해야 합니다.

필자는 올해 2학기부터 서울의 한 대학에서 '증권시장의 이해'라는 과목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실무경험과 이론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음 주는 중간시험 기간이어서 시험출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간은 수많은 시험을 잘 봐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시험을 출제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만들다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첫째는 공정하게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제된 문제에 대해 정답과 오답에 논란이 발생하면 곤란할 것입니다.

둘째는 수업시간에 배우지 않은 내용은 출제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 시험이 나온다면 학생들의 원망을 들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시험 전체에 대해 시험문제나 성격, 난이도 등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중요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서, 내가 그 자리에서 정책을 결정한다면 어떤 자세와 의도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릴까?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첫째로 보수적인 정책결정을 한다. 공무원 조직의 일원인 그들은 이제까지 없었던 획기적인 정책이 실패할 경우 받게 될 책임과 비난의 정도가 크기때문에 과거의 경험과 이미 알고 있는 정책 중에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둘째로 누가 보더라도 예상가능한 정책으로 결정한다. 금리인상이나, 통화, 환율의 경우 선제적인 정책 결정보다는 먼저 예상 정책의 방향을 시장에 흘린 다음 시장 반응을 살펴볼 겁니다.그리고 최종 결정에 반영하면서 예상을 벗어나는 정책결정은 지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 정책에 대한 신뢰가 중요합니다. 시행되는 정책의 효과성보다는 '그럴 만하다'고 시장이 인정할 수 있는 보수적인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시장의 혼란을 주기 싫어할 것입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문제를 두고 "중앙은행은 필요하면 결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금리인상이 성장에 비용을 초래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잡을 정도로 충분히 조이지 않을 경우 금리가 더 높고 길게 유지되면서 성장에 더 큰 피해를 야기한다"고 했습니다.취임 6개월을 맞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빅스텝(0.5% 기준금리 인상)을 두 번 단행하고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미국의 금리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금리가 계속 가파르게 올라가고 세계의 경제 수장들이 매파적 발언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고, 필자는 반대로 이들이 경제회복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과연 경기침체가 길게 이어지는 것을 원할까요? 경기침체를 원하는 경제 당국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풀어내는는 데 있어 책임과 미칠 수 있는 파장때문에 획기적이고 신선한 대책을 내 놓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듯 한 나라의 금리정책이든지, 국제간 경제정책이든지, 획기적인 정책은 시장에 나오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책이 결정되고 적절한 시기에 시행되느냐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볼 때, 위기를 미연에 예방하거나 나쁜 경제를 단시간에 회복시키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불황의 경제학>에서 '1997년 한국은 선진국의 문턱에 거의 이른 상태였다. 그러나 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한국에서도 시장의 신뢰가 꺽이면서 금융 및 경제 붕괴의 악순환이 시작됐다. 이 나라들이 물리적 상품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외국)투자자들의 머릿속에서 서로 연결된 나라들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투자자들은 한 아시아 국가의 곤란을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나쁜 뉴스로 간주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경기침체기에는 태국이든 한국이든 똑같이 아시아의 불안한 나라로 간주했다는 말입니다.

시장이 침체되고 악화일로에 있으면, 개별 국가에 대한 세세한 정보에는 관심이 없어집니다. 만약 한국의 투자자가 유럽에 있는 개별 국가가 좋은지 나쁜지 잘 알 수 있을까요? 경제가 이렇게 침체돼 있을 때에는 관심이 없겠죠. 유럽이 나쁘다고 하는 소식이 들리면 국내 투자자는 유럽펀드를 간단하게 해지하면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렇듯, 외국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에 한국도 태국에서 촉발된 위기의 유탄을 정면으로 받아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감내했어야 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시간은 또 흘러서 우리나라는 좋지않은 경제흐름의 시기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완전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다른 이머징 국가와 같이 취급돼 투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으려면 '한국시장에 대한 정책적 신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보여지는 정부의 정책과 정치권의 행동을 보면 우리 국민들조차 신뢰를 주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고구마를 물 없이 먹을 때처럼 답답한 상황입니다. 여전히 정책 담당자들이 시장 참여자와 일반 국민이 정말 원하는 정책을 합당한 시기에 시행하기를 바라지만, 지켜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달도 차면 기울듯이 경제의 흐름이 침체의 터널을 지나 바닥을 다지고 다시 회복기에 접어드는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의 하나로 기다리고 견디는 것이 합리적인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정부의 유효하고 시기 적절한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시간은 걸리지만 주기적으로 회복이 돼 왔다'는 보수적이고 중장기적인 시장관점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최악의 시장상황을 예상하고,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유동성 자금준비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경기흐름에서 볼 수 있듯이 침체는 지나가고 이보다 더 긴 경기상승 시기가 온다고 보고 지금의 힘든 상황을 담담하게 견뎌내야 합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하준삼 신한은행 산본지점 WM 프리미어 팀장, 경영학 박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