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달러 작품 '불쇼'한 허스트…프리즈 본고장 반응은 엇갈려

현장에서

NFT 작품 원본 태우는 퍼포먼스
1억弗에 팔렸다던 해골 조각상
알고보니 15년째 창고서 묵히기도

"요즘 누가 허스트에게 관심 있나
완전히 자본주의의 노예" 비판

일각선 "여전히 혁신적" 환호

런던=김보라 문화부 기자
‘수집가들이 그림에 돈을 태운 날, 그는 그림을 태웠다.’

지난 11일 영국 런던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갤러리 주인이자 영국이 낳은 ‘악동 화가’ 데이미언 허스트(57)가 A4 사이즈의 그림 ‘화폐(The Currency)’를 들고나와 하나씩 태우자 현지 언론들은 이같이 보도했다. 한 점에 2000달러짜리 그림들이 불 속에 들어가는 영상은 그의 SNS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날은 세계 3대 아트페어이자 허스트의 혁신적인 작품을 소개하는 무대가 된 프리즈 런던의 VIP 개막 전날이었다.허스트의 ‘불쇼’는 “물리적 작품과 디지털 작품은 양립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지난해 7월 1만 장, 2000만달러어치의 ‘화폐’ 시리즈를 가상 자산인 대체불가능토큰(NFT)과 실제 원본 작품으로 나눠 팔았는데 구매자들은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NFT를 선택한 사람은 4851명으로 종이로 된 원본 구매자(5148명)보다 적었다. 허스트는 NFT를 구매한 이들의 그림을 이달 30일까지 모두 태우기로 했다. 약 159억원 규모다. 그는 “원본을 태우는 과정은 실물 예술 작품을 NFT로 변환하는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라며 “NFT 투자가 제대로 된 가치를 얻기 위해선 물리적 원본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허스트의 퍼포먼스에 현지 반응은 엇갈렸다. 프리즈 런던에서 만난 유명 갤러리 관계자는 “미술계에서 누구도 허스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그리던 그는 이제 자본주의의 노예이자 사업가가 됐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그는 더 이상 혁신적이지 않은 거짓말쟁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최근 밝혀진 스캔들 탓이 크다. 2007년 1억달러(약 1200억원)에 팔린 것으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 다이아몬드 해골 조각상 ‘For Love of God’이 15년째 그의 창고에 처박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서다. 다른 시각도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스페인 평론가는 “예술은 항상 파괴적 혁신을 동반한다”며 “허스트의 ‘불쇼’는 수집가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줬다”고 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