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제약 뛰어넘는 메타버스…장애인 예술인에 '기회' [선한결의 IT포커스]

시각장애가 있는 판소리꾼 최예나씨는 지난 13일 음악 공연 무대에 올랐다. 코로나19 이후 장애인 예술가 공연이 뚝 끊긴 차에 모처럼 잡은 기회다. 평소라면 보호자와 함께 하는 이동 과정부터가 길고 번거롭지만 이번엔 전혀 불편이 없었다. 공연이 메타버스 가상 무대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가 장애인 예술가들의 무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프랜드는 이달 초부터 ‘장애인 예술인과 함께 하는 공감 힐링 콘서트’를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열고 있다. 약 한 시간 동안 장애인 예술가 너댓명이 연주나 노래를 선보이는 라이브 콘서트다. SK텔레콤은 이 공연에 참여하는 예술인에게 플랫폼 내 전용 공간(랜드)을 제공하고 행사 기획·운영 등을 전반적으로 지원한다.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메타버스의 특장점을 살려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무대에 오르는 이들은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과 장애청소년예술제 등에서 수상한 예술가다.

행사를 제안·기획한 이프랜드의 인플루언서 ‘방송인왕언니’는 “장애인 예술가들은 실력이 좋아도 일반 예술인에 비해 활동 무대가 적다”며 “가뜩이나 적은 공연 기회가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없다시피 해 대안을 찾은 것이 메타버스 공연”이라고 설명했다.'현생'에서 한국장애인문화협회에서 활동 중인 그는 "메타버스는 물리적·경제적으로 불편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요긴한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3일 이 공연에선 최예나씨의 판소리를 비롯해 네 가지 음악 장르 무대가 열렸다. 자폐가 있는 이태양씨는 드럼을, 발달장애인인 박형준씨는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였다. 지적장애가 있는 이지원씨는 동생 이송연씨와 함께 민요를 불렀다.

가상세계에 모인 관객들과의 소통도 있었다. 관객들은 아바타 이모티콘과 동작을 활용해 박수를 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댓글로 공연에 호응을 하거나 예술인을 응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지난 주말까지 총 6회 열린 이 공연엔 1700명(중복 접속자 포함)이 참여했다. 대부분 현장 공연은 ‘맘먹고’ 가야 하는 반면 메타버스에선 쉽게 채널에 접속해 음악을 즐기다 갈 수 있어 여느 공연 못지 않게 접속자가 몰린다는 설명이다.

장애가 있는 예술인들에겐 메타버스가 유용한 무대다. 일단 무대에 오르기까지 별도 이동이 필요 없다는 점이 큰 불편을 없앤다. 자폐 예술인의 경우 집안 등 익숙한 환경에서 연주를 할 수 있어 돌발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낮다.

최예나 씨는 "집에서 연습하듯이 노래를 할 수 있어 좋았다"며 "눈이 보이지 않지만 어머니가 옆에서 댓글을 읽어주면서 관객들과 실시간 상호작용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중이 장애인 예술인의 공연을 편견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이프랜드 인플루언서 방송인왕언니는 "메타버스는 이동을 비롯해 금전·심리적 여유 등 각종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곳"이라며 "현실에선 여러 이유로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더욱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