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쿠팡에 도전장'...아시아 e커머스 1위 넘보는 기업[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구영배라는 이름은 한국 e커머스 역사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효시’로서 말이다. 그는 인터파크의 사내 벤처를 G마켓으로 키워냈다. 마켓 플레이스(온라인 장터)라는 개념을 한국에 처음 들여온 이가 ‘미스터 구’다. 그가 당긴 화살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뻗고 있다.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한 뒤, 2010년 그는 다시 한번 이베이와 손을 잡고 싱가포르에 큐텐이란 e커머스 플랫폼을 세웠다.

이베이를 따라 했을 뿐이란 평가절하가 없진 않지만, 셀러(판매자)들의 심리와 생태계를 그만큼 잘 이해하고 있는 이는 적어도 아시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마존이 아시아 사업을 확대하려고 했을 때 구영배가 키워 낸 G마켓의 핵심 인사들에게 영입 제안을 한 건 우연이 아니다.

e커머스의 구루 VS 은둔형 외톨이

구영배 대표는 국내엔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공대 출신으로 외향적인 성향이 아닌 데다 일찌감치 싱가포르로 건너가 오랜 세월 해외에 체류한 탓이다. 그와 연관된 이들은 대부분 옛 G마켓 출신이다. G마켓에 있던 분들이 들려주는 그와 관련한 일화를 듣다 보면, ‘구영배=구루’라는 등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좋게 말하면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감식안의 소유자고, 다소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은둔형 외톨이에 가깝다. (물론, 돈이 워낙 많으니 평생 외톨이가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의 최대 장점은 오랜 경험이다. 연쇄 창업가로서 구영배 대표는 시쳇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 e커머스 분야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창업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닷컴 버블, 미국발 금융 위기 등 몇 번의 고비 때마다 수많은 e커머스의 유망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내공으로 치자면 그는 무협지에 등장하는 초절정 고수에 버금간다. 육갑자쯤 될 것이다. 게다가 ‘구영배 네트워크’는 겉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엄청나다. 우선 그의 처가는 인도의 유력 기업인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인연 덕분인지 최근 큐텐은 인도 시장에도 진출했다. 싱가포르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니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아시아의 창업가, 금융인들과도 폭넓은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이베이와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다. 박주만 이베이 인터내셔날 대표는 구영배 네트워크의 정점이다. 박 대표는 한국 옥션에서 G마켓을 인수할 때 관련 작업을 주도했다. 신세계그룹에 이베이코리아를 매각한 이도 박주만 대표다.

다소 장황하게 구영배에 관한 스토리를 풀어낸 것은 그의 한국 상륙이 꽤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킬 것이란 예상에서다. G마켓을 매각하면서 겸업 금지 조항에 서명한 구영배 대표는 호시탐탐 한국에 진출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베이코리아 매각 당시 신세계와 함께 큐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구영배 대표는 풍전등화의 처지에 있던 티몬의 새 주인으로 올라서면서 꿈에 그리던 한국 e커머스 시장에 진출했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명확하다. 아시아 통합 마켓플레이스다.

“아시아를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을 만들겠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큐텐은 현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일본 등에서 플랫폼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선 1위 사업자지만 나머지 국가에선 ‘빅3’ 안에 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회사로 큐익스프레스라는 물류 회사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한 물류 대행을 표방한 이 회사는 17개국에 지사를 갖추고 있다. 한국의 e커머스 셀러들이 주요 고객이다.구영배 사단의 한국 상륙은 그가 그리는 미래의 핵심 퍼즐을 채우기 위해서다. 아시아 통합 플랫폼을 만들려면 우선 물건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모이고, 이른바 ‘인지 잉여’로 불리는 ‘황금 데이터’가 쌓인다. 이런 연쇄 고리의 출발점이 바로 한국 셀러다. 한국의 e커머스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곳으로 꼽힌다. 여기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게 구영배 대표의 생각이다. 실제 싱가포르 큐텐에서 물티슈 1위 판매사는 한국 셀러다.

2018년 큐텐재팬을 인수한 이베이재팬이 최근 한국 셀러 모집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배경에서다. 이베이재팬은 올 4월 패션·뷰티 전문 서비스인 무브(MOVE)를 새로 선보였는데 400여 개의 한국 패션 브랜드가 이곳에 입점했다. K 콘텐츠 등에 대한 일본 내 인기에 힘입어 한류 상품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큐텐이 한국 빅 셀러들만 한데 모아 해외 e커머스 플랫폼에 진출시키는 큐퍼마켓을 출시하고, 큐익스프레스는 스톡쉐어라는 물류 창고 공유 서비스를 출시한 것도 한국 셀러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구영배 대표는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려 하는 등 자본 조달을 통해 글로벌 플레이어로 올라서려는 계획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며 “티몬의 주요 주주인 앵커파트너스 등 사모펀드들이 큐텐과 지분 교환을 통해 힘을 합친 것도 결국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큐텐-이베이-신세계 '3자 연합'의 가능성

구영배 사단이 앞으로 그들만의 전략을 현실로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가 떠나 있던 10년 넘는 세월 동안 한국의 e커머스는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달라졌다. 신세계와 롯데라는 전통의 유통 강자들이 ‘디지털 각성’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고, 네이버와 쿠팡은 큐텐이 상대하기엔 여전히 버거운 신흥 강자들이다.

네이버만 해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해 있는 소상공인들을 해외로 연결해주는 것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있다. 쿠팡 역시 싱가포르에 거점을 만들어 놓고 기존의 미국, 중국에 이어 동남아시아까지 ‘커버’하는 아시아 통합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김범석 쿠팡Inc 대표가 대만과 일본 진출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큐텐의 지위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 갈 길 급한 11번가는 아마존과의 유기적 통합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상품 구색과 서비스 등에서 아마존을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통로로 11번가를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한국 셀러로선 아마존만큼 탐나는 진출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큐텐의 한방은 무엇일까. 어디까지나 가정이긴 하지만, 큐텐-이베이-신세계의 3각 편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베이는 신세계그룹에 한국 법인을 매각하면서 지분 20%를 남겨놨다. 이베이로선 중국에서 실패하고, 일본은 신통치 않은 마당에 한국에서까지 완전히 발을 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시아는 여전히 e커머스 영역에서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구영배 대표와 이베이의 관계는 20년 가까운 세월이다.

거꾸로 G마켓을 키우고 있는 신세계그룹으로선 큐텐-이베이 연합을 위협 요인으로 받아들일 개연성도 없지 않다. G마켓의 경쟁력은 압도적인 ‘셀러 모음’이다. SSG닷컴이 오픈마켓이라는 애매한 정체성을 버리고 과감하게 브랜드 전문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한 만큼, G마켓은 훨씬 다양한 상품을 포괄하는 외곽 조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그룹은 스타벅스까지 아우른 ‘신세계 유니버스’를 통해 셀러 파워를 강화하려는 중이다.‘세계인’ 구영배의 등장은 한국의 e커머스 업계에 크든 작든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먼지바람이냐, 태풍일 것이냐는 두고 봐야겠지만.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