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생계 막막해지자…고령 운전면허, 6년간 50%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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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운전자 사고도 6년간 25% 늘어대기업을 다니다 퇴직한 김모씨(71)는 지난해 운전면허증을 다시 취득했다. 지난 2017년 면허증을 반납한 이후 4년만이다. 퇴직 후 고령의 나이에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한 김 씨는 법인택시에 취직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면허증을 다시 딴 것이다. 김 씨는 “전문 자격증도 없고 나이를 먹다보니 할 일이 운전대를 잡는 것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면허반납제 '무용지물'
"노인 일자리 다양화가 해답"
고령자들의 운전면허 수가 지난 6년간 50% 넘게 폭증했다. 고령 인구 증가세를 뛰어넘는 수치다. 생계문제에 몰린 고령자들이 운송업 등 운전과 관련된 직종으로 몰리면서 운전 면허 수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덩달아 고령자 운전 사고도 늘어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고령 운전자 53.8% 급증
19일 경찰청에 따르면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만 65세 이상 고령자는 430만4696명(지난 9월말 기준)에 달한다. 만 65세는 도로교통법상 고령자를 나누는 기준이다. 현재 운전면허를 소지한 고령자는 279만7409명이었던 지난 2017년에 비하면 53.8% 늘어났다. 전체 운전면허 수는 2017년 3166만5393명에서 3406만8492명으로 7.5% 늘어나는 데 그친 것에 비하면 고령자 운전면허 수 증가세는 급격하다.2018년 307만650명, 2019년 333만7165명, 2020년 368만2632명, 2021년 401만6538명으로 고령 운전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특별한 사회적 이벤트가 있었기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원인으로 고령 운전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차적으로 고령 인구가 늘어나며 나타난 현상이다. 급격한 고령화로 국내 만 65세 이상 인구는 2017년 735만6106명에서 901만8412명으로 22.59% 늘었다. 다만 인구 증가세보다도 면허 소지자 수 증가세가 훨씬 급격한 점을 감안하면 또 다른 다른 원인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에는 고령자 100명 중 38명이 면허를 소지했다면, 올해는 47명이 소지하고 있다. 같은 인구로 대비해도 더 많은 이가 면허가 필요해진 것이다.전문가들은 생업을 이어가기 위한 고령자들의 호구지책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36.9%는 현재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 18.7%는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택시, 화물차 운전 등 운송업이 진입 문턱도 낮고 상대적으로 노인들이 젊은이들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분야”라며 “노인복지가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적기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고령 운전자 사고도 덩달아 늘어
고령 운전자가 급증하자 운전 사고도 늘어나고 있다. 고령 운전자들은 순발력이 떨어지기에 사고가 늘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9월까지 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 건수는 2만4538건이다. 같은 기간 비교했을 때 지난 2017년(1만9536건)보다 25.6% 늘어난 수준이다. 교통체계의 발달, 교통 문화 개선 등으로 전체 사고 건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에 고령자 사고 수치만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사고 건수는 같은 기간 10.2%(2017년 15만9846, 올해 14만3474) 줄었다.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시정하기 위해 마련한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인센티브제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각 지자체 별로 고령 운전자들의 사고를 줄이고자 면허 반납을 하면 현금 등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운영한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교통카드 등 지원 액수를 10만원에서 최대 30만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면허를 딴 고령자들이 단순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면허를 반납하진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국내 노인 일자리 질이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상황”이라며 “사고를 줄이는 데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노인 일자리를 다양화하고 이들의 생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