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성 공학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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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숙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msoh@kofwst.org여고를 다녔으니 여성 네트워크는 일찍부터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공학인 네트워크 경험은 대학 4학년 때 미국여성공학인협회(Society of Women Engineer)의 북캘리포니아 지부가 주최하는 여성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한 게 처음이었다. 대학원 시절에는 학과에 10%도 안 되는 여성 대학원생 모임을 주도하는 선배 덕분에 여성 네트워크의 중요함과 서로를 지지하는 법도 배웠다. 첫 직장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서는 여성단체가 주도해 직장 내 어린이집 설립을 추진하는 것을 봤고,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한 통계를 만들어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도 지켜봤다. 나도 여성 연구원들을 모아 시험을 고안해 ‘지평을 넓혀라(Expand Your Horizon)’라는 여고생을 이공계로 유치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앞에 나서는 활동가는 아니었다. 교수가 되고 몇 년 동안 여학생들을 지켜보면서 그 나이 때의 내 모습을 보았다. 공부를 잘하는데도 전공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여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료를 찾고 책도 읽었다. 근데 내가 한 고민의 상당 부분은 남성이 다수인 공학 직군에서 소수 여성으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에 있었다. 역할모델도 부족했고, 여성 공학인으로서 경력 멘토링도 받지 못했고, 남성 중심 조직의 역학에도 무지했었다. 또한 다름을 부족함으로 해석하고 나 자신을 더 채찍질하곤 했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나를 해방시켰다.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나와 같은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 후배 여성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 여성으로서 과학기술계 진출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개인·협회·국가 차원의 해결 방안을 고민 중이다. 필요하다면 정책과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함께 리더십도 함양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지지는 기본이다. 조직의 소수, 때로는 유일한 여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여성 과학기술인을 지지하면서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올해 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과제는 과학기술계의 다양성 증진과 포용적 문화 확산이다. 이를 통해 여성 과학기술인의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도를 높이고 과학기술 중심 사회로 빠른 전환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우리 연합회 같은 여성 네트워크를 응원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