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안 하면 바보라더니"…예금 올인한 김 대리의 '반전' [박병준의 기승쩐주(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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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년 상승장 올라타지 못한 예금 투자자2020년 3월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하자 증권시장은 요동쳤습니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기관 투자자와 외국인은 '매물 던지기'에 들어갔고, 코스피 지수는 1400선까지 밀렸습니다. 대장주인 삼성전자 역시 4만원대 초반까지 떨어졌죠.
최근 하락장에선 원금 보전하며 현금 두둑이 쌓아
기존 주식 투자자도 안전자산으로 '머니무브' 심화
실적 발표 앞둔 은행주...증권가 전망은 엇갈려
패닉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돈 풀기에 나서자 시장은 'V자 반등'을 보이며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BBIG(배터리·반도체·인터넷·게임) 등 성장주의 활약 속에 2021년 1월 코스피는 사상 처음 3000을 돌파했는데요. 폭락장에서도 주가를 떠받친 '동학 개미'들은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당시 서울 대기업에 다니던 김 대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재테크라고는 예·적금 말고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 모두 '가즈아'를 외치며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자 FOMO(fear of missing out·혼자 소외되는 두려움)를 겪기도 했습니다. 지인의 친구가 암호화폐로 '억소리'나게 벌었다는 소식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죠. 이제라도 머니무브(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 행렬에 동참해야 하는지 조급해졌습니다.
고심 끝에 그는 예·적금에서 돈을 빼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벌진 못해도 잃지는 말자" 남들 따라서 투자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죠. 대신 공모주 투자를 시작해 소소하게 수익을 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지나고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금리는 빠르게 뛰었고, 증권시장은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저축하면 바보"라던 사람들은 "현금이 최고"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고점에 물린 동료들을 보며 김 대리는 '결국 내가 승자'라며 조용히 웃었습니다. 김 대리는 곧 만기가 끝나는 예금을 기존 금리의 두 배 이상인 상품으로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김 대리와 달리 그의 동료들은 울상입니다. '눈물의 손절'을 이어가며 예탁금을 빼고 있습니다. 하락장이 이어지자 시장을 떠나기로 한 거죠. 남은 자금은 고스란히 고금리 예·적금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른바 '역 머니무브' 입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증시 투자자 예탁금은 49조423억원으로 올해 들어 22조원 넘게 급감했습니다.
반면 예·적금은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은행은 8월 정기 예·적금이 전월 대비 34조1000억원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많이 늘어났습니다. 저축은행 예·적금 금리가 6%대 중반까지 치솟으면서 당분간 은행권으로 자금이 움직이는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개미들의 돈을 흡수하고 있는 은행주 주가는 어떨까요. 다음 주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4대 금융지주는 이달 들어 평균 4~8% 상승했습니다. 20일 종가 기준 우리금융지주가 8% 오르며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고, 신한지주(6%), 하나금융지주(5%), KB금융(4%)이 뒤를 이었습니다.투자 의견을 놓고는 증권가 전망이 엇갈립니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3분기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라면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NIM(순이자마진)이 3~5bp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이어 "경기침체 전망 속에 은행 역시 사업환경 악화에 따른 실적 우려가 존재한다"면서도 "국내 시중은행의 이익은 타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금리 급등이 더 이상 은행들에 호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 은행들은 차주들의 이자 부담 급증에 따른 예대금리차 인하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금리 상승에 따른 NIM 수혜를 온전히 받기가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연구원은 또 "미국 은행주의 양호한 흐름이 일시적으로 국내 은행주의 매력을 부각시킬 수는 있다"면서도 "금리 상승이 중장기적으로 은행주에 호재 요인은 아니라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박병준 기자 r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