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킹달러' 막아보려다…아시아 외화 곳간 털릴라

외환보유액
엔화 가치가 30여 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폭락하자 일본 재무성과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환율 방어에 나섰다. 도쿄 외환시장 딜링룸 모습. 한경DB
미국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는 ‘킹(king)달러’ 현상이 다른 나라 외화 곳간을 위협하고 있다. 달러 가치가 올랐다는 건 다른 화폐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뜻이다. 한국, 일본 등이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갖고 있던 달러를 풀면서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줄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시장분석업체 익잔테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이 통화 가치 방어에 소진한 외환보유액은 500억달러(약 72조원)로 집계됐다.

비상시 꺼내 쓰는 외환시장 안전판

코로나 대확산이 시작된 2020년 3월 이후 최대 규모다. 일본 200억달러(약 28조원), 한국 170억달러(약 24조원) 등의 순이었다. 앨릭스 에트라 익잔테데이터 수석전략가는 “미국의 금리 인상 행보에 따라 아시아 각국의 통화 가치가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외환보유액이란 정부와 중앙은행이 쌓아둔 외화자산을 말한다. 외환시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동원하는 것이 목적이어서 ‘경제의 안전판’으로 불린다. 예컨대 외화가 부족해져 환율이 요동칠 때 외환보유액을 투입해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고, 금융회사가 대외 결제를 처리하지 못하는 등의 긴급 상황에도 활용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감소 추세다. 블룸버그통신은 올 들어 세계 각국 외환보유액이 8.9% 줄어 집계를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폭으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23개 주요 신흥국 중 15개국의 통화 가치가 올초에 비해 10% 이상 하락했다”고 전했다.

넉넉한 외환보유액은 그 나라의 대외적인 지급 능력이 탄탄하다는 의미로 통한다. 얼마나 쌓아놓는 게 적정한지 명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일수록 유사시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비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을 절절하게 느낀 적이 있다. 외환위기가 덮친 1997년 12월 18일 한국 외환보유액은 39억4000만달러(약 5조6000억원)까지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돈을 빌려 ‘국가부도 사태’를 가까스로 면했지만 그 대가로 IMF가 요구하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견뎌야 했다.

25년 전 한국, 외환보유액 바닥나 IMF 도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9월 말 기준 4167억달러(약 600조원). 중국과 일본, 스위스, 러시아, 인도, 대만,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8위다. 당장 ‘위기 상황’이라 말하긴 어려운 단계지
한국경제신문 기자
만 전문가들은 향후 외환보유액 감소세가 가팔라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으면서 손실이 나지 않을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의 80%가량을 우량 채권에 묻어놓고 있다. 통화 종류별로 보면 달러가 70% 안팎에 달하고 유로, 엔, 파운드, 호주달러, 캐나다달러 등에도 분산 투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