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 132兆 공룡 됐지만…삼성·미래에셋이 '장악' [자본시장 새 먹거리 OCIO 대해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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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기관들, OCIO 속속 도입…"대신 굴려주세요"
시장규모 132조…사실상 12개사 수탁고
'미래 먹거리' 퇴직연금 OCIO 시장…유입 아직은 '미미'
국내 OCIO 시장은 한 번에 수천억 많게는 수십조원의 돈이 오가는 '대형 먹거리'다. 이러한 규모에 비해 일부 대형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들이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그럼에도 공적자금을 중심으로 시장이 커지면서 중소형사들은 꾸준히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격전지가 된 OCIO 시장의 현주소와 문제점, 해결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시장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증권가와 운용가 모두의 격전지로 부상해 업권 내 경쟁뿐만 아니라 업권 간의 경쟁도 거세다. 레드오션임에도 금융투자 업체들이 시장의 성장성을 점치는 이유는 '위탁기관의 활발한 참여' 때문이다. 최근 이들 기업에 돈을 맡기고자 하는 기금·기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데다 기존 공적기금의 운용자산(AUM) 규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OCIO란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역할을 외부에 '아웃소싱'(Outsourcing)한다는 의미다. 연기금과 국가기관, 법인 등이 여유자금을 외부 투자전문가인 증권사나 운용사에 일임해 운용하는 체계인 것이다. 전략적 의사결정 권한의 상당부분이 수탁자인 운용기관에 위임되는 만큼 내부 전문 운용인력이 부족한 위탁자 입장에선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2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많은 기금·기관들이 OCIO 제도 도입에 나서고 있다. 예탁결제원은 지난 8월 OCIO 도입과 관련한 자문용역을 발주했고 서민금융진흥원은 지난달부터 첫 위탁운용사 선정에 돌입했다. 지난 6월엔 '사랑의열매'로 유명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 모금재원에 대한 OCIO를 시작했다. 연초에는 예금보험공사가 OCIO 대열에 합류했다.
OCIO 업무는 결국 자산운용 업무이기 때문에 시장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시장이 불안정한 시기에 많은 기금·기관들이 OCIO 시장에 발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시황과 관계 없이 여윳돈을 운용하는 프로세스에 대한 수요가 커진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등 자산운용 여건이 나빠지는 가운데, 보다 적극적인 기금 자산운용을 추진해 수익률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다.한 운용사 OCIO 담당 팀장은 "OCIO는 자산운용을 둘러싼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사고파는 개념이라고 보면 편하다"며 "국민의 돈을 잘 운용하기 위해 요구되는 전문인력이나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꾸리기 어려운 만큼, 직접 운용이 아닌 외부 위탁을 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32兆 규모로 성장한 OCIO… 공적기금이 85%
위탁자들의 활발한 진입에 운용·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국내 OCIO 시장의 규모는 지난 8월 말 기준 132조원에 달한다. 시장은 공적기금의 여윳돈 증가에 따라 해마다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132조원 규모의 시장을 자금별로 구분하면 공적기금이 전체 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금액으로 보면 약 112조원인데 운용사와 증권사가 각각 86조원, 26조원씩 나눠 갖고 있다.2019년 당시 자본시장연구원이 집계한 공적기금 규모가 85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년 사이 32%나 늘어난 셈이다. 공적기금의 목적 자체가 충분한 재정을 투입해 기금의 사업상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인 만큼, 부처별로 기금 규모를 여유있게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공적연금을 뺀 남은 비중은 조 단위 사내 유보금을 외부에 맡기길 원하는 '민간기업'(6%)과 강원랜드·서민금융진흥원 등 '공공기관'(5%), '퇴직연금'(2%), '공제회'(1%), '대학기금'(1%) 등이 채우고 있다.이렇게 커져버린 시장이지만, 맡고 있는 수탁사는 일부에 그치고 있다. 사실상 운용사 6곳(미래에셋자산운용·삼성자산운용·신한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한화자산운용·KB자산운용)과 증권사 6곳(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신한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등 12곳이 장악하고 있다. 수탁고 점유율은 운용사 72%, 증권사 28%다.
국내 OCIO 시장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의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자본시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산운용업만 보면 전체 시장에서 상위 2곳(삼성·미래에셋)의 시장 점유율이 무려 94%에 달했다. 공적기금 부문에서 이들 두 운용사의 과점률이 98%에 달하기 때문이다. 증권업에서의 상위 기업들의 과점률은 79%로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이 역시도 몇몇 업체에 집중됐다.
기획재정부에서 주관하는 '연기금 투자풀'은 우리나라에서 OCIO 형태가 처음으로 도입된 사례로 불린다. 현재 이 돈을 관리하고 있는 주간운용사는 두 곳(삼성 26조1470억원·미래 10조8489억원)이다. 삼성자산운용은 제도 도입 시기인 2001년 말부터 줄곧 20년 넘게 주간운용사 지위를 유지했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작년 4월부터 관련 업무를 시작했다. 당초 주간운용사는 삼성자산운용 단독 체제였지만 2013년부터 복수운용 형태로 바뀌었다. 이 시기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첫 복수주간사로 낙점돼 8년 동안 자금을 운용했지만 작년 4월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밀려 자리를 내줬다. 연기금투자풀은 자산운용에 전문성이 부족한 중소형 공적기금들에 서비스를 제공했단 점에서 OCIO의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성격의 여러 기금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고용노동부의 산재보험기금과 고용보험기금, 국토교통부의 주택도시기금 등은 2015년 7월부터 전담자산운용 체계를 도입했다.9조5000억원 규모 고용보험기금은 증권사를, 22조원 규모 산재보험기금은 자산운용사를 운용기관으로 선정하고 있다. 고용보험기금의 전담자산운용기관은 한국투자증권이다. 산재보험기금의 여유자금 운용사는 삼성자산운용이다. 두 운용기관의 고용·산재기금 여유자금 위탁계약기간은 모두 내년 6월까지로 재선정이 임박했다. 이들 주간사 지위를 빼앗으려는 기업들이 많은 만큼 내년 재선정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주택도시기금의 경우 올 상반기 재선정을 마친 상태다. 직전 2기 전담 운용사였던 미래에셋자산운용과 NH투자증권이 또 한 차례 선정된 것. NH투자증권은 2018년 입찰 당시 1기 전담 운용사였던 한국투자증권을 제치고 선정된 뒤 다시 한 번 자리를 사수하게 됐다.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우 앞선 2014년부터 8년간에 이어 올해부터 다시 4년 동안 기금 운용을 전담하고 있다. 이들 2개사는 2026년 6월 말까지 4년간 43조원가량의 주택도시기금운용을 맡고 있다.
"노다지는 공공기관"…OCIO 시장 더 커진다
전문가들은 꾸준한 위탁자 참여로 OCIO 시장의 규모가 해마다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간은 공적기금 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왔다면, 앞으로는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 자금이 새로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이다.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사모펀드 사태를 계기로 공기업의 여유자금 운용에 관한 기획재정부의 관리 지침(가이드라인)이 제시되는 등 상당한 규모의 공기업 여유자금 운용과 관련해 OCIO의 잠재적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한 운용사 OCIO 담당 팀장은 "대부분의 공적기금들은 OCIO 시장에 진출한 상태이지만 공공기관의 경우 아직 노다지에 가깝다"며 "큰 규모의 자체 자금을 갖고 있는 공공기관이 속속 들어오면 시장에 활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과점 형태가 굳어진 '공적기금 부문'과 최근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공공기관 부문' 외에도 시장은 여러 유형의 위탁자산으로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OCIO 시장에 신규 진입하려는 금융회사들이 틈새시장으로 새 유형의 세부시장을 개척한 결과다. 특히 전문가들이 업계의 미래 주요 먹거리로 꼽는 세부시장은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 OCIO는 DB형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의 일부나 전부를 외부에서 대행하는 것을 뜻한다.
퇴직연금 제도는 증권업의 OCIO 시장에 들어선 직접적인 배경이지만, 아직까지 퇴직연금 적립금의 시장 유입은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집계한 현재 퇴직연금 DB 적립금의 OCIO 운용 규모는 약 2조원이다.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 DB 적립금 규모는 171조5000억원으로, 이 중 1.2%의 자금이 OCIO 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부 자산운용업의 수탁고여서 증권업의 시장 참여는 전무한 상황이다.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컨설팅부 임원은 "계약형 퇴직연금 대비 기금형 퇴직연금의 장점이나 차별화가 부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유의미한 유입을 포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계속)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