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키보다 큰 지휘봉에 발등 찍혀 죽은 '佛오페라 아버지'

신연수의 3분 클래식

지휘자의 세번째 손 지휘봉의 역사

18세기까지 1.8m 길이 지휘봉
바닥 쿵쿵 찍으면서 박자 세
륄리, 제 발등 찍어 세균감염 사망
포디움(지휘대)에 선 지휘자는 손이 세 개다. 오른손과 왼손 그리고 ‘지휘봉’이다. 지휘자의 세 번째 손끝, 지휘봉의 움직임에 따라 연주의 속도와 강약, 색깔이 달라진다. 화가가 든 붓처럼, 시인이 든 펜처럼 지휘자에게 지휘봉은 창조를 위한 도구다.

지휘봉에 대한 기록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의 지휘봉은 지팡이와 비슷한 형태였다. 금이나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18세기까지 약 6피트(1.8m가량)짜리 긴 지팡이가 지휘봉으로 쓰였다. 그때는 지휘봉을 바닥에 쿵쿵 찍으면서 박자를 세는 식으로 지휘했다고 한다.지팡이 모양의 지휘봉과 관련해 ‘웃픈(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프랑스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1632~1687)는 지휘봉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루이 14세를 위한 연주회에서 그는 당시의 지휘 방식대로 바닥에 긴 막대기를 내리치면서 박자를 맞췄다. 그러다 실수로 자기 발가락을 찍었다. 상처가 났고, 곧 세균에 감염됐다. 발가락을 잘라내야 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결국 온몸으로 퍼져 사망했다.

다른 모양의 지휘봉도 있었다. 오케스트라 악장이 지휘자 역할을 맡을 땐 바이올린 활이 지휘봉이 됐다. 악보를 막대기 모양으로 돌돌 말아 사용하는 지휘자도 있었다.

요즘 지휘봉은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모양이나 소재가 제각각이다. 통상 핸들(손잡이 부분)은 코르크로, 케인(막대 부분)은 나무나 탄소섬유, 플라스틱 등으로 제작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지휘봉도 많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자신이 직접 꺾은 나뭇가지로 만든 지휘봉을 사용한다고 한다.모든 지휘자가 오른손에 지휘봉을 드는 건 아니다. 왼손잡이 지휘자는 왼손으로 지휘봉을 잡기도 한다. 아예 지휘봉 없이 ‘맨손 지휘’하는 사례도 많다. 손가락 길이보다 짧은 지휘봉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러시아 출신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트레이드마크는 이쑤시개처럼 생긴 짧은 지휘봉이다. 그는 평소에는 맨손으로 지휘하지만, 더욱 정확한 지시가 필요한 곡이라고 판단하면 ‘이쑤시개 지휘봉’을 든다. 연주자들의 집중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짧은 지휘봉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지휘봉의 모양이나 잡는 법은 제각각이다. 연주자에게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으면, 이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다. 다만 색상은 어두운 공연장에서 눈에 잘 띄도록 밝은색을 주로 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