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커진지 얼마 됐다고…벌써 '레드오션' [자본시장 새 먹거리 OCIO 대해부②]

소수 대형사의 사업 독식…"후발주자도 기회를"
'저보수' '전담체계' '위임범위' 등도 지적돼

"운용역량·성과 아닌 보수·인력으로 경쟁"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국내 OCIO 시장은 한 번에 수천억 많게는 수십조원의 돈이 오가는 '대형 먹거리'다. 이러한 규모에 비해 일부 대형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들이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그럼에도 공적자금을 중심으로 시장이 커지면서 중소형사들은 꾸준히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격전지가 된 OCIO 시장의 현주소와 문제점, 해결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건전한 경쟁구도 부재로 레드오션화된 과점 시장.'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 'OCIO 시장 성장 가능성과 완전위임 확대 필요성'에서 현재 국내 OCIO 시장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공적연기금투자풀이 조성된 지 21년이 흐른 만큼 연차만 보면 시장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겉만 성장했을 뿐 속을 보면 딴판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형사들의 과점 체계가 굳어지고 경쟁 구도가 사라지면서 시장엔 '레드오션' 우려까지 불거진다.전체 시장의 85%를 차지하는 공적기금을 중심으로 업계 안팎에선 다양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먼저 일부 기업들의 '독과점 문제'가 지적된다. 약자가 뒤처지고 강자가 독식하는 '약육강식'의 구도가 일찍이 잡힌 탓에 후발주자들의 진입 허들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연기금투자풀과 산재보험기금 등 대형 OCIO를 운용 중인 삼성자산운용은 작년 예금보험공사의 채권자산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데 이어 올 들어선 강원랜드과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주간 운용사 지위도 따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삼성자산운용과 함께 연기금투자풀과 예금보험공사의 자금을 맡고 있고 올해 4월 주택도시기금 전담운용업무를 따냈다.

NH투자증권은 증권사들 가운데 압도적인 운용 경력(트랙레코드)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에만 주택도시기금을 비롯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 강원랜드 등 유치에 연달아 성공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고용보험기금의 전담 자산운용기관이다.당장 올해만 봐도 양대 운용사와 NH투자증권이 대부분의 OCIO를 따냈다. 입찰에 나섰다 하면 이변 없이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특히 양대 운용사는 최근 들어서 '신사협정'이라도 맺은 듯 번갈아 응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지난 3월 주택도시기금 입찰에 미래에셋운용이 단독 참가하고, 7월 중퇴기금 입찰엔 삼성자산운용이 홀로 응찰한 바 있다. 기존 운용기관이나 유력 운용기관의 단일 지원으로 경쟁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NH투자증권. 사진=한경DB
증권사 OCIO 담당 한 임원은 "증권사들이 OCIO 시장에 뛰어든 주된 배경은 퇴직연금이다. DB와 DC형 시장이 발전해서 국민의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하는데, 제한된 한두 사업자만이 서비스를 공급한다면 가입 고객들이나 회사 입장에선 제한된 선택지를 갖는 셈"이라며 "시장 플레이어들이 많지 않으면 경쟁 상대가 없어 서비스 개선과 개발이 보다 소극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독점기업이 사업상 차질을 겪을 경우 대국민 서비스에 부담이 작용한다"며 "여러 대의명분을 감안해 시장에 참여하고자 하는 후발주자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낮은 보수율'도 OCIO 시장 성장을 늦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운용보수는 운용대상인 기금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보수로, 성과보수(초과수익률에 따른 인센티브)가 정착되지 않은 국내에선 사실상 OCIO 운용기관들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우리나라 OCIO 운용 보수율은 대체로 3bp(1bp=0.01%) 안팎이다. 8bp가량으로 유지되는 해외와 비교하면 절반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운용기관들의 경쟁이 심한 탓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일부 기금이 운용기관 선정 시 '엄격한 전담운용체계'를 요구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고용·산재기금이나 주택도시기금 등 대형 공적기금은 응찰 기업들로부터 전담조직 구성원을 제출받는다.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심사에서 '전담 조직의 규모' '전담 인력의 전문성' '조직 내 업무별 분업화' '전담조직의 사내 독립성' 등을 구체적으로 따지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들 내부에 '투자풀사업본부'라든가 '주택도시기금운용부문' 등 기금 이름을 딴 부서가 만들어져 있는 것도 기금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대형 기금이 전담체계를 고집할수록 중소형 기금이 OCIO 제도 도입을 주저하게 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문제는 최근 들어 1조원 미만의 작은 기금·기관들도 전담 체계를 원한다는 점이다. 제안요청서(RFP)에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업들이 알아서 전담조직을 꾸려서 입찰한다. 주간운용사로 선정되기 위해서다. 한 자산운용사의 OCIO 담당 부장은 "위탁사에 인력 현황을 제출하기 전에 '경쟁사에서 몇명 규모로 낸다더라'하는 소식이 들리면 무조건 그보다 많은 인원수를 적어야 승산이 있지 않겠느냐"며 "수천억원 규모의 중소 OCIO에도 전담인력 12~13명이 달라붙는 지경이 됐다"고 전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점적 전담인력은 30명을 웃도는데 운용보수율은 3bp도 채 안 되는 비정상적 시장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운용 역량과 성과를 두고 겨뤄야 하는데 실상은 보수나 투입 인력 같은 외형적 경쟁만 치열해지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아울러 '운용기관의 위임 범위 확대'도 아직 진행형인 과제다. OCIO 제도를 도입한 대부분의 위탁사들이 운용기관에 전략적 자산배분을 비롯한 상위 의사결정의 역할을 맡기지 못하고 있다. 완전위임이라기보다는 부분위임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하위 운용사 선정과 포트폴리오 구축' 등에 그치고 있는 현 운용기관의 역할을 '대부분의 전략적 의사결정'으로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OCIO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해 수익률 제고에 기여하기 위해선 자산배분 권한부터 허용돼야 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주된 의견이다.(계속)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