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살 마음까지 접었어요"…분위기 확 바뀐 이유 [車 한파 온다(상)]

"출고대기 길어 신차계약 취소하더니…분위기 확 바뀌었다"
계약 취소 또 취소…금리 부담에 차 구매부터 접는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사는 직장인 정재우 씨(38)는 최근 제네시스 GV70 가계약을 취소했다. 구형 세단 차주인 그는 보유한 아파트값이 몇년새 크게 뛰면서 아내와 상의해 신차를 계약했지만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식으면서 차량 구매를 미루기로 했다. 정 씨는 "당장 현금이 부족해 신차 캐피탈(할부 금융)로 새 차를 마련하려 했으나 연 7%가 넘는 오토론 금리가 부담돼 기존 차를 더 타기로 했다. 당분간 차를 구매할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호황을 누리던 자동차 업계가 내년부터 차량 구매가 급격히 얼어붙는 수요 감소에 맞닥뜨릴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와 금리 인상이 부동산과 함께 지출이 큰 소비 중 하나로 꼽히는 자동차 수요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이후 가파르게 뛴 자동차 가격과 1년이 넘어가는 대기 기간까지 겹쳐 예비 구매자들이 급격히 이탈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금리 부담에 자동차 못 산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3~6개월 뒤면 자동차 산업이 공급과잉 상태에 빠질 것"이라며 "지난 3년간의 유례없었던 가격 결정력과 완성차 업체의 마진율이 돌연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의 주가 전망을 낮췄다.

이 보고서 발표 후 포드 주가는 하루 만에 6.9%, GM은 4% 떨어졌다. 그 여파로 현대차와 기아 주가도 동반 하락했다. 포드는 지난달 19일 실적 예상치(가이던스) 발표 자리에서 "내년부터 이어질 갑작스런 수요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며 "현재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중심으로 재고가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동차 전문 사이트 에드먼즈닷컴을 인용해 "현재 미국의 자동차 구매 대기자 20~30%는 금리 인상에 마음을 접을 것"이라며 "이들이 실제 계약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보도했다. 자동차 대출 금리(오토론)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팬데믹 기간 누렸던 저금리의 '환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에드먼즈닷컴에 따르면 미국의 올 3분기 신차 대출 평균 금리는 5.7%로 최근 3년 내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 기간 미국 소비자들이 자동차 구매시 받는 평균 대출 금액은 4만1347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8315달러)보다 7.3% 증가했다. 오토론을 받은 구매자 가운데 월 상환액이 1000달러를 넘기는 인원도 8% 늘었다.

WSJ는 자동차 전문 리서치 업체 콕스오토모티브를 인용해 "금리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와 능력이 감소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급 제한에 따른 펜트업(Pent up·억눌렸던 수요가 급격히 살아나는 현상) 수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랜디 파커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3분기 미국 판매 실적을 발표하면서 "(경기둔화 영향으로) 시장에서 부정적 소비자 심리가 퍼져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WSJ는 "공급망 문제가 완화하고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공장 생산량을 확대하면서 더 많은 신차와 트럭이 공급되고 있는 가운데 금리 인상과 경제적 압박이 자동차 구매 심리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젠 신차 구매 대기자들이 '사상 최고 수준 가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완성차 업계, 수요 감소 대비

일선 영업점에서도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현대차 영업점 직원 A씨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가계약 취소는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금리 부담 등에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주에 취소한 계약만 십여건"이라고 귀띔했다.

완성차 업계는 내년 전망치를 일제히 조정하고 있다. BMW, 폭스바겐 등은 유럽의 신규 주문량이 감소하고 있거나 수요 감소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도 올해 글로벌 전체 신차 판매량 전망치를 7000만대 중후반으로 하향 조정했다. 현대차그룹은 연초만 해도 지난해 7640만대에서 7.3% 증가한 8200만대로 올해 총수요를 예상했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에 반년 만에 지난해 수준으로 낮췄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는 올해 국내 판매 예상치를 2750만대에서 최근 2700만대로 낮춰잡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진행한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은 부동산 가치 하락에, 유럽은 에너지 위기에 경기침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내년 경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중국에서 모델3와 모델Y 차값을 최대 9% 인하했다.신차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금융권은 자금 경색 우려에 관련 상품을 중단하거나 없애고 있다. 우리금융캐피탈은 지난달 19일부터 배달의민족 노동자를 위한 신차 대출상품 '신차오토론-배민라이더전용'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지난 6월에는 '국산신차 다이렉트 우리금융캐피탈㈜'와 '장기렌터카' 상품 판매도 중단했다. 금융권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신용경색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의 일환이다.

중고차 시장도 타격

중고차 수요 또한 감소하고 있다. 신차 구매 지수의 선행지표로 꼽히는 미국 맨하임 중고차 지수는 신차 공급 부족에 따라 수요가 몰리면서 올 1월 236.3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지만,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자 7월엔 221.5로 한 풀 꺾였다.

미국의 대표적 중고차 거래업체 카맥스는 올 3분기 판매 대수가 1년 전보다 6.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카맥스는 "금리 인상과 광범위한 인플레이션 압력, 낮은 소비자 신뢰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실적 발표 이튿날 카맥스 주가는 24% 폭락했다. 카맥스의 경쟁사인 온라인 중고차 업체 카바나 주가는 23%, 미국 최대 자동차 딜러업체 오토네이션 주가도 10% 하락했다.

한국딜로이트그룹은 지난 8월 말 자동차 구매의향이 최근 1년 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자동차 구매 의향 지수(VPI)'는 한국시장에서 8월 말 85.7을 기록했다. 지수가 100 이하이면 차량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더 적다는 의미로, 2021년 9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김태환 한국 딜로이트 그룹 자동차 산업 리더는 "자동차 산업 관계자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맞서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치 않고 무엇을 더 원하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