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민생에 숨통 틔워달라" 당부했지만…野 "우리 권한 행사할 것"

예산안 심사 험로 예고

尹, 초당적 협력 강조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 천명
"약자 복지로 취약계층 더 보호
법정기한 내 확정해달라" 촉구

野 보이콧 속 '예산정국' 격랑
'부자감세' 저지 나선 민주당
"예산·법안 강력한 권한 행사"
교부금 등 개혁입법도 좌초 위기
< 텅 빈 野 의원석 지나 퇴장하는 尹대통령 >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마친 뒤 텅 빈 야당 의원석을 지나 퇴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김병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새 정부의 첫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건전한 재정 기조로 전환하면서도 약자 복지와 미래 준비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경제와 안보의 엄중한 상황’에서 이런 세 마리 토끼를 좇는 게 쉽지 않은 현실적 어려움을 나열하며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정 정국에 따른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지속되면서 예산안 심사는 진통이 예상된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치는 (윤 대통령) 본인이 없다고 단언한 것 아니냐”며 “원내에서 강력하게 예산과 법안을 가지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해 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민주당은 26일 예산안 관련 워크숍을 열고, 내년도 예산안에 꼭 반영해야 할 민생 우선 10대 과제를 선정할 방침이다.

“건전 재정으로 국제신인도 확보”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세계적인 고금리와 금융 불안정 상황에서 국가 재정의 건전한 관리와 국제신인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국제신인도 확보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일부 기업어음(CP) 시장에 자금 경색 조짐이 나타나는 최근 금융시장 상황을 반영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2024년 총선을 앞둔 여야에 ‘묻지 마 증액 심사’를 경고하는 의미도 담겼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직접 건전 재정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은 국제신인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연설에는 성장과 복지의 우선순위가 미세하게 조정된 내용도 담겼다. 윤 대통령은 내년 예산안의 구체적인 분야를 소개하면서 ‘약자 복지’를 가장 먼저 다뤘다. 관련 분량이 전체 연설문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이번 연설에서 ‘약자 복지’가 ‘미래 준비’보다 더 강조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지난 5월 취임사에서 “빠른 성장 과정에서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한 발언과 다른 뉘앙스다. 대통령실의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최근 SPC 계열의 제빵공장 사고를 보고받은 뒤 불같이 화를 냈다”며 “경제 위기 상황에서 취약계층을 더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최근 들어 더 강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법정기한 내 통과 어려울 듯

국회법에 따르면 여야는 오는 12월 2일까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확정해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달라”고 당부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한 본회의장은 절반 이상 좌석이 텅 비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169명 의원 전원이 최근의 각종 사정 정국에 반발하면서 본회의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당장 정부가 전액 삭감하기로 한 지역화폐 예산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로 재직하며 관련 사업을 추진했던 이재명 대표가 특히 강하게 주장한다. 민주당은 새 정부의 각종 세 부담 경감 법률안에 대해서도 “부자 감세”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주식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를 2년 유예하는 금융투자소득세법 개정안과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는 법인세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정기국회에 제출한 각종 개혁 입법도 민주당에 막혀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예산 증가에 비례해 늘어나는 교부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대학 등 고등교육 및 보육에 쓸 수 있도록 법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국회 내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좌동욱/노경목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