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체 재사용'까지 도전…한국형 스페이스X, 스타트업이 뛴다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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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의 거대한 동체가 구름을 헤치고 지표를 향합니다. 한 줄기 불길과 함께 휘청이는 몸체를 제어하며, 조심스럽게 수직으로 자세를 일으킵니다. 천천히 낙하를 이어가던 발사체가 흙먼지와 함께 땅에 내려앉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차세대 다목적 우주 발사체 '스타십'은 최초의 재사용 발사체로 운용되어 온 '팰컨9'의 노하우를 담아 착륙 시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압도적 무게의 발사체가 안정감 있게 발사장에 내려앉는 광경에 사람들은 "감동했다"는 표현까지 내놓습니다. 정해진 발사장에 서는 착륙의 정확도도 감탄 요소입니다.
발사체 재사용 기술은 명실상부한 우주산업의 핵심 역량이 됐습니다. 우주 공간까지 위성을 옮긴 동체가 지표면으로 돌아와 다시 사용되기 위해선 수많은 기술 집약이 필요합니다. 스페이스X를 현재의 위치에 올려놓은 기반이자, 발사체 스타트업이 도달을 염원하는 '난도의 최고봉'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 분야 토종 스타트업의 도약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차세대 스페이스X를 꿈꾸는 국내 스타트업이 축적한 기술력과 누적 투자금을 바탕으로 연구를 가속한 것입니다. 다가올 3년 사이 소수의 기술 스타트업을 위주로 시장 재편이 마무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의 항공우주 스타트업이 경쟁의 최전선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타깃은 '동남아'…발사체 회수 계약 체결했다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페리지)는 지난 9월 말 필리핀 국가 우주 기관인 필리핀 우주청(PhilSA)과 우주발사체 발사 및 회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핵심은 페리지가 쏠 로켓의 1단부가 우주에서 필리핀 영해로 수직 착륙하면, 이를 회수할 권한을 가지는 것입니다. 계약 상대방인 필리핀 우주청은 대통령실 직속 중앙정부 기관입니다. 필리핀 과학기술부(ST) 내에 분산되어 있던 우주 정책과 과학기술 연구·개발 등의 기능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2019년 8월 출범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이 외국 국가기관과 발사체 회수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오는 2024년 제주도 해안에서 발사 예정인 액체로켓 모델 라인업 'BW-1' 발사체는 총 2단부로 구성됩니다. 발사체는 기본적으로 분리형 구조를 가지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쪼개지고, 다시 불타오르며 위성을 우주 공간에 올리기 위해 작동합니다. 위성이 포함된 몸체를 우주에 올리기 위해, 아랫 몸체에 해당하는 1단부는 발사궤적 시뮬레이션 상 약 150초간의 연소를 거칠 전망입니다.연소 시간을 고려하면, 계산상 필리핀 근해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구를 놓고 보면, 세로 방향으로 위성이 돌기 위해 동남쪽으로 발사 궤적을 그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은 한반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260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우주 발사체는 해당 국가와의 MOU 없이는 1단부가 영해에 무단 침범한 것이 되고, 회수가 막힐뿐더러 외교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MOU 체결로 인해 페리지는 향후 필리핀 내에서의 시험 발사 및 상업 운용까지도 추진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페리지 관계자는 "필리핀은 70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나라로, 위성통신 수요와 관심이 매우 많은 국가"라며 "발사체 회수를 시작으로 현지 법인 설립을 통해 필리핀을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발사 형태는 아무런 지표 장애물이 없는 제주도 인근 해상의 대형 선박(잭업 바지선) 위에서 2단 분리형 발사체를 쏜 후, 재사용 대상인 1단부가 우주에서 해상까지 내려오면 기체가 낙하산 펴는 방식이 유력합니다. 인근 해상엔 회수용 배가 대기하고 있을 계획입니다. 복잡한 착륙 장치가 없어도 구현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미국의 유명 우주개발업체 ‘로켓랩’이 초창기 이런 방법을 택했습니다. 역시 치밀한 계산과 동체 제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기술입니다. 페리지는 기술 보강 거쳐 스페이스X와 비슷한 형태의 호버링 착륙 방식도 구현할 예정입니다. 스페이스X의 팰컨9이 선보인 것으로, 보조로켓이 동체의 방향을 틀어 기기를 지상까지 제어할 수 있는 상위 기술입니다.
발사체 재사용, 단가 깎는 핵심 기술
페리지는 2018년 설립된 국내 첫 액체연료 시스템 기반 우주 발사체 스타트업입니다. KAIST 출신 학생 창업가 신동윤 대표가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제주도에서 KAIST와 함께 민간 액체로켓을 국내 최초로 발사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인연으로 제주도에서 발사체 연구·개발과 향후 민간 발사장 건설을 위한 협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행된 투자 라운드는 시리즈B 브릿지, 누적 투자금액 300억원 상당입니다. 오는 2024년엔 기업공개(IPO)를 예정한 상태입니다. 지난 9월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했습니다.페리지의 특징은 액체연료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발사체는 연료를 태워 추진력을 얻습니다. 여기엔 고체와 액체의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각각 장단점은 극명합니다. 고체연료는 개발 과정이 단순하고 비용이 쌉니다. 다만 정밀한 발사체 제어는 어렵습니다. 액체연료는 반대입니다. 한번 타면 끝까지 연료를 소진해야 하는 고체 형태와는 달리, 연료 잠금과 재점화가 자유롭습니다. 당연히 정밀한 추력 제어와 발사체 운용이 가능합니다.문제는 가격입니다. 발사체는 탑재 중량과 발사 상황에 따라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라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통상 고체연료는 액체연료 대비 절반까지도 싸게 운용할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액체연료를 쓰는 글로벌 발사체 업체 아리안스페이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들의 로켓 모델 '아리안5' 회당 발사 비용은 약 4000만달러로 추정됩니다. 우리 돈으로 약 570억원 정도인데, 수차례 계량으로 저렴해진 비용이 이만큼입니다. 반면 발사체를 다시 쓰는 스페이스X의 팰컨9은 회당 발사비용이 1000만달러(143억원)에서 2000만달러(286억원)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싼 로켓은 25% 가격만으로도 이용이 가능합니다. 상업 경쟁력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또 다른 토종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 역시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스페이스 챌린지사업'의 재사용발사체 연구개발(R&D) 사업에 선정된 것이 시작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의 '재사용발사체 연착륙을 위한 유도항법제어 기술 개발' 주관 연구 개발기관으로 인하대와 함께 참가하고 있습니다. 오는 2025년까지 총 4년간 연구에 참여하게 되며, 총 17억원을 지원받습니다. KAIST, 항공대, 청주대와 함께 R&D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2017년 설립된 이노스페이스는 고체연료와 액체연료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엔진을 이용해 소형위성을 우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12월 브라질에서 국내 첫 민간 시험발사체가 될 ‘한빛-TLV’의 준궤도 시험 비행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준궤도는 우주의 경계선인 고도 100km를 비행하는 실험으로, 발사체 스타트업의 기술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주요 척도입니다. 아직 국내에선 스타트업이 준궤도 발사에 성공한 이력은 없습니다.
2~3년이면 '종결'…글로벌 시장 점유하라
높이 16.3m, 직경 1m, 중량 9.2톤(t)의 제원을 지닌 발사체에는 이노스페이스가 독자 개발한 15t급 하이브리드 엔진이 탑재됩니다. 하이브리드 엔진은 고체상태 연료와 액체 상태 산화제를 함께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구조가 단순하고 세밀한 추력 조절이 가능한 특징이 있습니다. 아직은 R&D의 극초기에 해당하기에 실제 개발이 어디까지 성과를 낼지 지켜봐야 하지만, 이노스페이스는 하이브리드 방식에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입히려 하고 있습니다.업체들이 동시다발적인 경쟁에 나서는 배경엔 ‘승자독식’이 특징인 발사체 시장 상황이 있습니다. 향후 3년 사이 소수의 기술 업체를 중심으로 재편이 끝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데, 업체들은 남은 시간 동안 발사체 기술력과 상업 발사의 수익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먼저 궤도 발사 성공 여부는 발사체 기술의 기본기로 불립니다. 발사체 스타트업의 기술력 평가는 엔진 시험, 100㎞ 이하 준궤도 비행, 100㎞ 이상 궤도 비행의 단계별 성공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선 100여 개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실패 가능성이 큰 사업 분야다 보니 스타트업이 많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오는 2024년까지 궤도 발사를 끝내겠다고 호언한 상태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위 20개 업체가 시장에서 유의미한 이익을 거둘 것으로 내다본다"면서도 "지난해 엔진 시험은 40여 개 업체, 준궤도 비행에 성공한 업체는 10개 상당으로 20개의 수는 충분히 메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의 아이스페이스, 갤럭틱에너지, 미국의 파이어플라이, 렐러티비티스페이스 등이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건은 단가가 됩니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 업체는 초기부터 고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복직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일회용이더라도 고체 로켓을 아주 저렴하게 개량하든지, 액체 로켓을 여러 번 재활용하든지 업체가 가장 최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식을 확정해야 한다"며 "특정 기술이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시장에선 이미 액체로켓의 장점을 가지고도 단가를 떨어트린 스페이스X의 사례가 살아있습니다.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이 뚜렷한 모델이 나온 이상,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무시할 이유가 없게 된 것입니다. 현재 궤도 비행을 넘어 완전한 상업 발사가 가능한 업체는 로켓랩, 버진오빗, 아스트라 등 10개 내외 정도입니다. 이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로켓을 고도화하면서도, 재사용 발사체 기술 연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로켓랩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로켓랩은 최근 헬리콥터로 발사체 1단부를 낚아채 재사용하는 기술을 공개했습니다. 이 업체는 지난 5월 뉴질랜드 동부 마히아반도 발사대에서 34기의 소형 위성을 탑재한 2단 로켓 '일렉트론'을 발사했습니다. 이륙 15분 후, 고도 2km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헬리콥터가 낙하산을 펴고 내려오는 1단부를 갈고리로 회수한 것입니다. 아리안스페이스 역시 재사용이 가능한 액체 메탄 연료 기반 '프로메테우스' 로켓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3차원(3D) 적층 방식 설계를 통해 제조 비용을 떨어뜨린 것은 또 다른 특징입니다. 우주 시장 조사기관 유로컨설트에 따르면 글로벌 소형위성 발사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까지 191억달러(약 27조20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참 한 가지 더
인류,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조준하다국제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오는 14일엔 달 무인 궤도 비행선인 '아르테미스I'의 발사가 진행될 전망입니다. 당초 올해 발사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발사 시일을 확정하면서 우주항공 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한국을 포함해 글로벌 21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스I는 25일 반 정도 달을 왕복한 뒤 12월 9일 태평양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아르테미스I 발사는 전체 프로젝트의 1단계에 해당합니다. 우주선엔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 달 주변의 비행을 진행하다 지구로 귀환하는 구조입니다.2024년 예정된 2단계 계획은 달 유인 궤도 비행입니다. 사람이 우주선에 직접 탑승해 달을 탐사합니다. 달에 직접 착륙하지는 않습니다. 이후 2025년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가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킬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 탐사 과정에는 달에 장기 정착할 수 있는 기본 데이터 수집도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